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영장·보석여부 함께 결정땐
‘유전무죄’ 비판 불가피
“흔들림없이, 차근차근”
사법개혁 속도조절 내비쳐
영장·보석여부 함께 결정땐
‘유전무죄’ 비판 불가피
“흔들림없이, 차근차근”
사법개혁 속도조절 내비쳐
“모든 건 서서히,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게 올바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27일 취임식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법제도는 각 사안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며 ‘조용한 가운데 내실있는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장제도, 대법관 구성과 증원, 법관인사제도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선 ‘흔들림 없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써가며 소신을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석조건부 영장제도’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 제도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보석과 같이 보증금, 주거제한, 피해자 접근 금지 등 다양한 조건을 부과해 석방하는 제도다. 조건 위반 때는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해 구속을 집행하게 된다. 올해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6인 소위에서 합의됐으나 도입되지 않았다.
양 대법원장은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죄를 저지른 사람을 불구속하는 걸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불구속 수사 원칙은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돼 있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인식격차’를 해소할 방안으로 “영국과 미국에선 수사기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함께 보석처분을 정한다”며 “구속을 시키면서 보석조건을 함께 정하면 수사효율도 살리고 피의자 자유권도 살리는 양면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석조건을 까다롭게 하면서 영장을 발부한다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의 입법이 있어야 제도화할 수 있는데다, 수사권이 크게 제한될 소지가 커 검찰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석방의 조건이 까다롭게 제시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에게 석방의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인식이 더욱 악화될 수 있어 법조계에선 실현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본다.
대법관 구성과 관련해선 다양성보다 안정적 운용에 무게를 뒀다. 양 대법원장은 “외형적인 다양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원론적 방향은 그게 맞지만 현재 대법원이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사건) 부담을 볼 때 다양성만 추구하면 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상고심 사건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대법원의 현실을 고려할 때 법령 해석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연륜 있는 대법관들로 대법원을 채울 현실적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11월20일 퇴임하는 김지형(53)·박시환(58) 대법관과 내년 7월에 임기가 끝나는 박일환(60)·김능환(60)·전수안(59)·안대희(56) 대법관의 후임까지 전체 대법관(14명)의 절반에 가까운 6명을 임명 제청하게 되는 만큼 이날 발언은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 대법원장은 “우리 사법체제에서 대법원 기능을 수행하려면 현재 재판에 참여하는 대법관 12명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재판업무를 줄이는 방안으로 대법관 증원이 아니라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법관인사제도가 피라미드 구조로 관료화됐다는 비판에는 “법관의 인사권을 분산시킬 의향이 있다”며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장의 건의를 받는 방법이 있고 아예 법규를 바꿔 법원장들에게 인사권 자체를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그는 법관인사제도가 피라미드 구조로 관료화됐다는 비판에는 “법관의 인사권을 분산시킬 의향이 있다”며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장의 건의를 받는 방법이 있고 아예 법규를 바꿔 법원장들에게 인사권 자체를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