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시행 성폭력특별법 ‘범죄시점’ 특정 안돼
범죄예방 위해…“형벌불소급 원칙 훼손” 반론도
범죄예방 위해…“형벌불소급 원칙 훼손” 반론도
성인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특례법) 조항을 법 시행 이전의 범죄에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신상정보 공개도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보안처분’이기 때문에 헌법의 형벌불소급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특례법 위반 등)로 기소된 김아무개(39)씨에게 징역 13년만 선고한 원심을 깨고 신상정보 공개명령까지 부과하라는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특례법의 신상정보 공개명령은 응보 목적의 형벌과 달리 사전예방을 위한 보안처분적 성격이 강한 점 등에 비춰, 법 시행 이전에 범죄를 저지르고 그에 대한 공소제기가 이뤄졌더라도 공개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올해 4월16일부터 시행된 성폭력 특례법은 신상정보 공개의 대상이 되는 범죄의 ‘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있다.
특례법 부칙 2조는 신상정보 공개와 관련해 ‘시행 후 최초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부터 적용한다’고만 규정해, 법 시행 이전 범죄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런 ‘입법 미비’ 탓에 하급심들에선 판결이 엇갈려왔다.
이와 달리 올해 1월 초부터 시행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은 시행 뒤 최초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부터 신상정보 공개 규정을 적용하도록 해, 소급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례법 입법 이전에 저질러진 범죄에까지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것은 ‘소급 처벌’로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 헌법은 13조에서 ‘모든 법률은 행위시의 법률을 적용하고 사후 입법으로 소급해 적용할 수 없다’는 원칙(형벌불소급)을 규정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신상정보 공개명령이 형벌은 아니지만 형벌적 성격이 없지 않다”며 “입법 미비로 신상의 공개 범위는 판례로 형성해갈 수밖에 없지만, 형벌불소급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염두에 두고 “공개명령 같은 보안처분은 법치주의 원리, 개인의 권리와 자유 옹호, 법률생활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소급 적용이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며 “명확한 규정이 없어 견해가 나뉠 때 법원이 관련 규정을 소급 적용이 가능한 방향으로 해석하면 헌법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해 9~11월 수차례에 걸쳐 강간과 절도 등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징역 15년과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전자장치 부착 20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신상정보 공개명령은 명확한 규정에 의해야 한다”며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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