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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억울함에 울다 지쳤을때, 희망버스가 힘을 주었다”

등록 2011-11-10 21:19수정 2011-11-10 22:55

<b>“웃으며 투쟁”</b> 309일 간의 크레인 위 고공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신관 앞에서 배우 김여진 씨 등 환영 나온 지지자들과 함께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밝게 웃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웃으며 투쟁” 309일 간의 크레인 위 고공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신관 앞에서 배우 김여진 씨 등 환영 나온 지지자들과 함께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밝게 웃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통의 세월 견딘 해고자 가족들
아무 잘못 없는데 쫓겨나 생계도 가족도 벼랑 몰려
젖먹이 업고 다니며 호소 “눈물 마를 날 없었어요”

한편으론 일상 복귀 설렘 한편으론 회사약속 불안
“1년안 복직 안지켜지면 쌍용차처럼 비극 우려”

경남 김해시에 살고 있는 동우(14·가명)네는 최근 1년간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다. 동우의 소원은 여관방이라도 잡아 엄마·아빠·동생과 함께 1박2일을 보내는 것이다.

지난 2월14일 동우네는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한진중공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아빠 이규섭(39)씨를 정리해고한다는 통지서였다. 이씨는 서른살에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9년을 꼬박 일했다. 그는 아무 잘못 없이 내쫓기는 게 억울해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나섰다. 집 밖에서 먹고 자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몸이 상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먹고살기 바쁜데 파업은 무슨 파업이냐’고 채근하는 친척들과도 관계가 소원해졌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10일 오후 부산 영도조선소 신관 앞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환영하는 펼침막을 든 채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10일 오후 부산 영도조선소 신관 앞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환영하는 펼침막을 든 채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고스란히 엄마 김미경(40)씨의 몫이 됐다. 당장 남편의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살림이 쪼들렸다. 김씨는 건설회사 경리일을 하며서 가계를 지탱할 수 있었다. 카드를 돌려막고, 장시간 부업에 나서는 다른 해고노동자 아내들보단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김씨도 4개월 전부턴 임금을 받지 못해 일을 쉬고 있다. 보다 못해 친정에서 보험료를 내주기도 했다. 김씨는 해고노동자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활동을 하면서 저녁마다 집회에 나가 부당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호소했다. 묵묵히 일만 하다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남편이 밉기보단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두 아들이 모를 리 없었다.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큰아들 동우는 담임선생님에게 집안 사정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노사합의가 이뤄진 10일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아빠를 돌려줄 수 있게 돼 좋다”고 말했다.

11개월간의 장기투쟁 끝에 회사로 돌아가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94명과 가족들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그날 이후, 평범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갓난 아들을 업고 농성장을 누비던 가대위 대표이자 조합원 김동섭(34)씨 아내인 도경정(32)씨는 그동안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고 살길이 막막해 울었다. 지난 6월 남편과 동료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던 영도조선소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는 모습을 보고서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8월엔 국회 청문회장을 찾아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억울함을 풀게 도와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울면서도 억울했다. ‘왜 그랬냐’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닌 조남호 회장인 것 같아서였다.


농성이 길어지고, 함께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면서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지쳐갔다. 이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민 건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이었다.

조합원 문권욱(31)씨 아내인 변은경(31)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우리 문제를 사람들이 몰라줘 답답하고 힘들었을 때 희망버스가 찾아왔다”며 “희망버스 행사가 한두번 열리고 끝나겠지 했는데,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와 응원을 해주니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11개월 동안 내 일이 아닌 남에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도경정씨는 “너무 오래 싸워 이제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신문에도 기사 한줄 나지 않는 장기투쟁 사업장, 투쟁도 못해 보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억울한 해고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분들을 생각하면,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노사 합의에 이르게 된 것도 죄스럽다”고 말했다.

1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본관 인근에서 만난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얼굴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설렘과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94명이 당장 재고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은경씨는 “남편이 재고용을 기다리는 동안 마땅히 다른 데 취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쌍용자동차 상황을 보면, 회사가 노사합의를 지키지 않아 노동자들이 연이어 숨지는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나”고 말했다. 부산/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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