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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생산되는 학교폭력…당한 아이 절반이 가해자로

등록 2011-12-27 20:43수정 2011-12-27 21:49

학교폭력 대안을 찾자 (상)
힘·돈·성적따라 계급 나눠
노예계약·빵셔틀 등 횡행
우등생이 따돌림 주도도

아이들, 또래 폭력 당연시
부모-학교 서로 해결 미뤄
“범죄란 것 분명히 알려야”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길들여지고 있다. 평등해야 할 친구 관계가 돈이나 성적, 힘에 의해 ‘계급’으로 나뉜다. 가해학생은 장난삼아 폭력을 일삼고, 피해학생은 벗어날 방법이 없어 체념하거나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선택을 한다.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학교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 노예계약 맺고 계급 나눠 서울 도봉구의 한 중학교에는 이른바 ‘노예계약’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돈이 많은 학생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일정 기간 안에 받지 못하면 시키는 대로 하도록 하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자녀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는 학부모 연아무개(56)씨는 “친구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려는 것이 목적”이라며 “돈을 갚지 못하면 ‘빵셔틀’(빵심부름) 비슷하게 이것저것 시키는데 한두번이 아니니까 애들 사이에서는 노예계약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중학교에 다니는 김아무개(15)군은 “최근에 반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천원을 주고 학원 숙제를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며 “힘 있는 애들이 겉으로는 부탁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어쩔 수 없이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선배들이 후배에게 빵을 사오라고 시키는 이른바 ‘빵셔틀’이 많아 매점을 폐쇄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신체적 힘·돈·성적·교우관계·부모의 영향력과 같은 유·무형의 힘에 따라 친구들 사이에 계급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그 구조 안에서 폭력이 당연한 듯 일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최근 인터넷에서는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노스페이스 점퍼의 가격대에 따라 계급을 나눈 일이 화제가 됐고, 2~3년 전부터 힘·돈·성적 순위에 따라 친구들을 ‘귀족-양민-천민’으로 나눈 사례들이 떠돌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학교폭력이 일부 비뚤어진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친구들 간의 권력관계에 따라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폭력행위도 빵셔틀이나 미니홈피에 욕설과 악성댓글 달기부터 모욕감 주기, 원하지 않는 행동 강요하기, 신체 폭행 등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고성식 서울 노원청소년상담지원센터 팀장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바르고 똑똑하고 성실한 아이들이 자신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따돌리는 경우가 최근 들어 많아지는 것 같다”며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이 스트레스를 다른 아이들에게 풀고 학생들 관계를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1 학생인 최아무개(16)군은 “선생님들부터 성적 낮은 애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본 아이들이 돈이나 성적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고 학교에서 ‘왕따나 폭력은 잘못’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자신보다 못한 친구를 괴롭히는 게 당연한 일로 치부되다 보니, 피해를 본 학생이 또다른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는 ‘폭력의 재생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박순진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09년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가해학생이 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 3449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의 경우 49.1%가 학교폭력 가해 경험도 있다고 응답했지만, 피해 경험이 없는 학생은 가해 경험의 비율이 23.7%에 그쳤다. 박 교수는 보고서에서 “청소년 폭력 가해자의 일부는 다른 경우에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며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파악해서는 청소년 폭력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학교폭력 전문가인 최철수 범죄예방지도사는 “부모나 학교가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다 그나마 문제를 학교 안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아이들 사이에 폭력이 되풀이된다”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함께 뛰어들어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박태우 기자 kmlee@hani.co.kr

■ 왜 구조화 되나

학교, 방치하거나 포기하거나

교사 “개입 여지 적고 처벌 미약”
굴비엮듯 꼬여있어 조사 덮기도

대구에서 중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이아무개(16)양은 대전에 살고 있는 친한 언니 황아무개(23)씨에게 카카오톡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학교 가기 싫어. 죽고 싶어. 걔 죽여버리면 안 되나.” 이양은 이날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담임 선생님에게도 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양을 괴롭힌 친구들을 불러서 사과만 하게 했을 뿐 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양에게 “너만 걔들에게 당하는 게 아니니까 참아라”고 했다. 게다가 이양의 어머니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펴낸 <2010~2011년 인권상담 사례집>에는 학교가 아이들 간의 폭력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사태 해결에 미온적이었다는 내용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개별 학교나 담임 교사 차원에서 학교폭력 문제에 개입해 해결책을 모색해볼 여지가 별로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ㅎ고 교장은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끝까지 발본색원해서 가해학생을 격리하거나 해야 하는데 현재 학교가 할 수 있는 조처라는 게 너무 없다”고 말했다. 일선 교사들은 “중학교의 경우 강제 전학이 최고 형벌인데, 강제 전학을 보내려고 해도 학부모가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미루면 딱히 방법이 없어 겨우 등교 정지 시키는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피해학생이 교사나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숨기는 것도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왕따 사실을 교사에게 말하면 ‘찌질’하다고 왕따를 더 심하게 당해 피해학생이 쉽게 말을 못한다”고 했다. 학교폭력이라는 게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이 얽힌 문제라 이를 제대로 조사하고 해결책을 찾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욱 전교조 따돌림사회연구모임 회장(서울 단대부고 교사)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해보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고 굴비 엮듯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한다”며 “어느 순간에 책임 소재를 정해야 하는데,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조사하다가 덮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충신 진명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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