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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칼럼]연예인 X파일…누가 돌을 맞아야 하나?

등록 2005-01-21 16:17




‘인터넷 강국’은 이번 파문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보셨습니까?” “네. 저도 봤습니다.” “아직 못보셨다고요. 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바로 보내드릴께요”

한 광고기획사에서 만든 인기연예인 100여명의 평가자료가 담긴 문서가 인터넷을 통해 광범하게 확산되어 파문을 부르고 있다. ‘연예인 X파일’로 불리는 이 문서는 초고속인터넷 강국인 우리 사회의 정보화 현실과 문화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제2의 O양 사건’에 비교되는 이번 사건은 ‘인터넷 선진국’을 자부하는 우리 사회에 정보화사회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인기 연예인들의 이름과 얼굴을 들이대도 누구인지 모를 아줌마 아저씨들도 자녀들과 소통이 가능한 ‘신세대’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광고모델로 선호되는 잘 나가는 인기 연예인’들의 신체특징과 자기관리 수준, 스캔들, 앞으로의 인기도 전망을 ‘X파일’에 근거해 대부분의 국민들이 논할 수 있게 되었다. 엑스파일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가능한 ‘긍정적 효과’다.

그러나 이런 ‘긍정 효과’와 비교해 엑스파일의 부정적 효과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하체가 짧고 다리가 안 예뻐 치마 입으면 안 어울림” “자주 보면 싫증나는 얼굴” “사생활 문란, 스캔들 폭발직전” “호스트빠 출입 잦음” “정계 실력자 OOO가 스폰서임” “OOO와 동거했음”

엑스파일이 준 ‘긍정적 효과’ vs ‘부정적 영향’

이 문서에서 연예인들의 특징과 거론된 ‘평가’의 유형들이다. 인기와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로서는 ‘치명적’인 선언이자 공표다. 이 엑스파일에서 거론된 일부 연예인들은 막말과 쌍욕으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이 참에 연예계를 떠나고 싶다는 중견 연기자도 있다. 이들의 분노를 자아낸 이른바 ‘스캔들’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소문’ 차원이지, 확증된 것들이 거의 없다. 연예인들의 광고모델로서의 향후 가치를 논한 대목도 ‘주관적’인 것일 따름이다. 아무리 미에 대해 획일적 기준이 횡행하는 한국사회라 할지라도, 아버지와 딸이 좋아하는 가수와 영화배우가 다르듯 연예인의 매력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선진국, 한국사회에서 ‘엑스파일’의 전파(傳播) 속도는 그야말로 전파(電波)의 속도에 버금갔다. 눈 깜짝할 새 대다수 네티즌들이 ‘연예가 리포터’가 되었다.

이번 연예인 엑스파일에서 곤혹스러운 것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범죄’라는 데서 출발한다. 다수의 연예인이 ‘치명적 피해와 회복불가능한 손실’을 입은 것에 비해 ’가해자’와 ’책임을 물을 대상’이 불분명한 것이 이번 사안의 특징이다. 가해자를 가려낼 수 없으면, 가려내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면 아무리 큰 피해가 일어나도 ‘속수무책’이다. 25만명의 희생을 가져온 남아시아 지진해일처럼.

과연 누가 이번 ‘연예인 엑스파일’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며, 비난받아야 하는가?

1. ‘보고서’를 만든 제작사의 책임인가?

현재로서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상이다. 제일기획이 동서리서치를 통해서 발주한 이 보고서가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피해 연예인들은 속속 법무대리인을 선정해 소송절차에 들어갔다. 피해청구금액은 1000억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나 광고대행사들의 입장도 있다. 많게는 수십억원 단위의 광고가 집행되고 광고모델의 이미지에 따라 상품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는 이미지 통치의 시대에 광고대행사들도 고민이 깊다. 기업과 상품의 명운이 모델 이미지에 달려 있는데 이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조사없이 덜컥 모델로 기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동서리서치를 통해 이번 기획문서를 만든 제일기획은 하청사에, 하청사는 ‘아마도 아르바이트생이나 다른 경로로’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2. 정보를 제공한 기자들 책임?

이번 조사에 응한 10명의 방송 연예리포터와 스포츠신문과 통신사의 연예담당 기자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대부분의 정보가 이들 10명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통해서 집성된 까닭에, 그 대가로 20만원 상품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취재활동을 통해서 얻은 업무관련 정보들을 광고대행사에게 자료로 제공했기 때문에, 이들 기자들의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관련 단체들의 성명도 나온 상태다. 언론노조와 민언련은 이와 관련해 ‘언론윤리의 문제’라고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연예담당 기자들은 “우리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광고기획사의 내부자료 구축에 있어 연예인들의 광고모델로서의 향후 전망과 위치 등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조언을 한다는 조건으로 임했을 뿐, 문서의 작성과 평가 등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3. 스캔들을 만들고 다닌 일부 연예인들 자업자득?

“설마 그럴 줄이야”라는 반응도 있지만, 다수의 네티즌들은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와 “그럴 줄 알았네. 뭐 별로 새로운 것이 없네”라고 반응한다. 일부 연예인들이 이미지에 근거해 상품광고 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돈벌이를 하는 만큼, 연예인들은 이미지사회에서 ‘공인(公人)’이라는 시각이다. 공인이면 공인답게 자신의 사생활도 대중의 관심과 검증의 영역에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번 엑스파일에 대해 “사실이 아닌 것은 소송을 통해 피해보상을 받아야 하겠지만, 상당수는 그런 의혹을 확인해준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포털들이 벌인 여론조사에서 80% 이상의 네티즌들은 ‘신뢰할 만한 내용’이라고 응답했다.

4. 선정성을 좋아하는 언론과 포탈들 책임?

확인된 정보보다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 선정적 기사와 제목으로 ‘연예인 엑스파일’을 퍼뜨리고 본 언론도 돌을 맞고 있다. 더욱이 ‘네티즌들이 많이 본 기사’가 주요하게 노출되는 인터넷언론에서는 며칠 동안 ‘연예인 엑스파일’ 관련기사들이 모든 기사를 압도했다. 인터넷은 이 기사를 보도하는 데 있어서만 아니라, 이 파일의 유포에 결정적 도구로 작동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서 3메가 약간 안되는 이 파일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뒤늦게 싸이월드를 비롯한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처벌받을 수 있으니, 관련 파일을 삭제하라”고 공지했고, 자체 삭제에 나섰다.

5. 정보를 주고받고 유포한 네티즌 책임?

이 파일이 네티즌들에 의해 유포되었기 때문에 이 파일을 주고받은 네티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과 신상정보가 담긴 파일을 무차별적으로 유포시킨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게 이 비판의 논거다. 자체 기업적 필요에 따라서 연예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기업보다 이런 파일을 유출시키고 유포시켜서 사회문제화하게 만든 구체적인 사용자들 한사람 한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은 지난 16일 ‘몰카’ 불법음란물을 유포한 인터넷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을 곧 국회에 내겠다고 밝혔다.

6. 문화 지체인가, 인터넷시대의 불가피함인가?

새로이 생겨나는 물질문명이나 문화현상을 법과 제도가 포섭하지 못하는 경우에 생겨나는 이런 문제를 문화 지체(cultural lag)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전의 저작권과 명예훼손으로는, 타인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적으로 유포시킨 수백만명의 개인들을 처벌하기 난망이다. 인터넷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법안은 나타나지 않았고, 과거의 법률로 규제하려 했다가는 부작용이 더 크다. 정보인권단체들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등이 추진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 등은 이번 사태로 인해 추진속도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법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공인에 대한 정보수집은 일부 허용하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정보주체 본인이 항상 그 정보를 열람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안전띠·에어백·교통경찰 없는 과속질주의 끝은?

이번 ‘연예인 엑스파일’은 만인에게 ‘공통의 화제 제공’이라는 통속드라마 이상의 만족을 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누구에게는 돌이킬 길 없는 ‘치명상’이다.

피해자는 명확하지만,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익명의 다수가 참여한 사회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 아닌 것이 되는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각성하자”고 도덕 재무장을 외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곳부터 하나하나씩 시작해야 한다.

일부는 “자동차 문명시대에 교통사고는 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인터넷문명의 불가피성을 얘기한다. 기술적으로 성인정보나 연예인들의 신상정보 유포를 막을 수도 없고, 이에 가담하는 익명의 네티즌 수백만명을 처벌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정도쯤은 우리가 인터넷 문명을 누리는 ‘비용’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차량 등록대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교통사고가 반드시 늘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안전띠를 매고 에어백을 만들고, 곳곳에 과속감지 카메라를 만들고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교통사고 피해는 줄어든다. 교통사고를 없앨 수 없다는 주장과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인터넷문명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안전띠도 에어백도 없는 승용차를 타고 교통경찰도 없는 아우토반을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

구본권 <한겨레> 온라인뉴스부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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