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칼끝이 간결하면서도 깊게 핵심 부위를 파고들고 있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연루된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25일 소환조사하면서 동시에 박영준(52)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박 전 차장의 혐의에 대해 공개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침묵하던 태도와 사뭇 다르다. 이날 압수수색으로 박 전 차장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공개 모드’로 전환한 만큼 검찰이 그의 금품수수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시티 ㅇ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박 전 차장이 서울시 정무보좌역을 그만둔 뒤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들여다보는 금품수수 시기(2007년 5월~2008년 5월)와 대략 맞아떨어진다. 박 전 차장은 2007년 6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퇴임과 함께 서울시 정무보좌역에서 물러난 뒤 같은 해 8월에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네트워크팀장을 맡는다. 그는 당시 이 후보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를 결성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이 대통령 당선 뒤인 2007년 12월~2008년 2월에는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 2008년 2~6월에는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을 지냈다.
검찰은 돈이 전달된 시점의 박 전 차장 행적을 놓고 볼 때 인허가 청탁 명목 이외에도 돈이 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인허가 이외의 다른 용도로 준 돈도 있다는 ㅇ대표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차장의 위치에 따라 금품의 성격이 달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25일 오후 ㈜파이시티의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조성사업 예정지인 옛 화물터미널 터 하늘 위로 비구름이 가득하다. 류우종 기자
박 전 차장이 서울시장 정무보좌역을 나와 이 대통령 선대위 등 선거캠프에 있을 때 파이시티 쪽 돈을 받았다면 대선용 자금으로 받았을 개연성이 있다. 박 전 차장으로서는 선대위 팀장을 맡으며 여러 정치활동에 필요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줄이 필요했을 시기다. 검찰이 문제가 된 돈에 한정해서는 사용처까지 보겠다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ㅇ대표가 검찰 조사에서 2008년 1월 박 전 차장이 아파트 구입 비용으로 필요하다며 요구해 10억원을 브로커 이아무개(60·구속)씨 계좌를 거쳐 전달했다고 진술한 점도 박 전 차장의 당시 위치를 볼 때 눈여겨볼 대목이다. 당시 박 전 차장은 이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을 맡고 있었다. ㅇ대표가 박 전 차장 앞으로 줬다는 돈의 규모가 대부분 한번에 수천만원이었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유독 뭉치가 큰 액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실제 이 돈이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검 관계자는 “브로커 이씨가 일정 부분 사용한 흔적이 있지만 박 전 차장에게 얼마나 전달됐는지를 확인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박 전 차장에게 적용을 검토하는 혐의는 최 전 위원장처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특가법의 알선수재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했을 때 적용된다. 만약 박 전 차장이 받은 돈을 대선캠프에서 활동비로 썼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적용될 수 있다. 검찰은 박 전 차장이 공무원 신분이었던 서울시 정무보좌역을 나온 뒤 파이시티 쪽 돈이 전달됐다는 정황으로 볼 때 돈을 받은 사람이 공무원일 경우 해당되는 알선수뢰 혐의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다만 박 전 차장이 서울시 재직 때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퇴직 후 대가성 있는 돈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사후수뢰’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도 있다.
대검 관계자는 “지난 16일 ㅇ대표를 불러 진술을 받은 이후 불과 열흘 만에 최 전 위원장을 부를 정도로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 수사가 반드시 파이시티 인허가 수사로 한정해 간다고 할 수는 없으며, 있으면 있는 대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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