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시위대’ 무죄 취지로 원심 파기환송
집회자유 침해 판단…“공공질서 위험 명백해야”
집회자유 침해 판단…“공공질서 위험 명백해야”
미리 신고하지 않은 옥외집회라도 공공질서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을 때만 경찰이 해산을 명령할 수 있고, 이런 위험이 없는 상황이라면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동단체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 박아무개(35)씨 등은 2010년 4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박지연씨의 장례식장인 서울 ㅅ병원 주차장에서 소속 회원 15명과 함께 미신고 옥외집회를 연 뒤 병원 정문까지 행진하다 경찰의 요구에 따라 자진 해산했다. 이들은 이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주변에 다시 모여 손팻말 등을 나눠 들고 열을 지어 본관 주위를 돌려고 시도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자진 해산을 요청하고 3차례 해산을 명령했으나 박씨 등은 따르지 않고 1시간가량 시위를 계속했다. 박씨 등 6명은 사전에 신고하지 않고 시위를 벌인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50만~7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사전에 집회 신고를 하지 않은 만큼 법률이 정한 해산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고, 박씨 등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집시법은 옥외집회 및 시위를 주최하는 사람은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미신고 옥외집회 및 시위에 대해선 관할 경찰서장이 자진 해산 요청과 해산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박씨 등의 행위는 집시법이 정한 시위에 해당하고 이를 미리 신고하지 않은 점은 유죄가 인정되지만, 경찰의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미신고 여부가 아니라 집회 및 시위 과정에서 공공질서에 위험이 발생했는지를 기준으로 법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옥외집회 및 시위로 인해 공공의 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을 명령할 수 있고, 이런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했을 때에만 처벌할 수 있다”며 “‘미신고’라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해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이는 집회의 사전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용하는 것과 다름없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전신고는 행정관청 쪽에 집회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해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지,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며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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