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와의 조찬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08년 이 대통령의 건립 공표 뒤, 몇 차례 수정을 거쳐 현재 임기 내 개관을 목표로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정책 미래를 열자]
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졸속 추진
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졸속 추진
독일 현대사 박물관은 토론만 10년
한국은 논의없이 MB 임기맞춰 개관
“단선적 역사아닌 다원성 반영해야” 이명박 정부 들어 극심했던 역사 교과서 논쟁과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5·16 쿠데타 언급 등에서도 보듯, ‘역사 논쟁’은 단지 지난 일들에 대한 시각 차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치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현재의 지향, 미래의 전망과 직접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역사를 정치권력의 충돌 속에 나부끼는 영역으로만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계간지 <역사비평> 편집진과 역사문제연구소 안팎의 학자들이 꾸린 ‘역사정책기획단’은 최근 “어떤 정권교체에도 퇴행하지 않을, 역사에 대한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역사비평> 99·100호에 ‘전환기의 역사정책’을 제안했다. <한겨레>는 이들이 내놓은 역사정책 과제들을 앞으로 네 차례 매주 학술면에 소개한다. 첫 회로 ‘졸속’ 논란을 낳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진단하고, 이어 동아시아 역사 갈등과 역사 교과서 논쟁, 과거사 청산·기록물 관리, 남북 역사교류와 문화재 정책 등을 짚어본다. 시작은 비슷했다. 1982년 10월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집권하자마자 현대사박물관을 짓겠다고 공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8년 집권 직후 같은 구상을 제시했다. 보수 정당인 기민련 소속의 콜 총리 앞에는 13년간의 좌파 사민당 내각이 있었고, 이 대통령 앞에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다. 앞선 시기 어렵게 정착된 비판적 역사의식과 성찰적 역사문화에 맞서 두 보수 정치가들이 내세운 명분은 유사했다. 콜 정부는 서독의 ‘성공’과 ‘민족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내세웠고, 이명박 정부는 현대사박물관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의 성공과 기적’을 내외에 과시하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같지 않았다.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독의 수도 본에 위치한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 집’의 경우, 이미 1983년 건립계획이 제시되었지만 1994년에야 개관했다. 10년여 동안 토론하고 수정하고 다시 토론하며 민주적 합의 과정을 밟았다. 서독의 비판적 역사가들과 좌파 야당의 정치가들은 정부 주도의 현대사박물관이 결국 인위적인 관제 역사상과 이데올로기적 정체성 강화에 복무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며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역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언론들도 앞다투어 문제점을 지적했고, 연방의회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결국 1986년을 전후해 콜 정부는 비판을 수용하며 전시 구상의 조정에 나섰다. 사민당 계열의 비판적 역사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위촉됐고, 다양한 대안적 주장들도 수합돼 민주적 합의에 이바지했다. 개관은 몇 년 늦어졌지만 전문가들의 지지와 시민사회의 동의에 기초해 얻은 성과는 작지 않았다. 국내외 수많은 방문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현대사박물관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독일연방공화국역사의 집’ 전시와 운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다원적 관점의 유지와 개방성, 전시 내용에 대한 정부의 개입 금지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주체들은 건립 과정과 전시 구상 모두 비민주성과 관료적 폐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학자들이나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공개적 토론 과정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 임기 안에 무조건 개관하겠다는 당파 정치적 발상도 경악할 노릇이다. 야당을 비롯한 비판적 시민사회도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진영 논리에 갇혀 ‘권력을 되찾으면 우리가 다시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안이하며 오만하다.
역사박물관은 정치권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역사전시에 대한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와, 사회적 급변 속에서 생겨나는 공동체 성원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정부 주도의 현대사박물관이 가지는 문화 정치적 성격과 함의에 대해 다양한 공적 토론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현대사박물관이 갖춰야 할 두 가지 전시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다원적 역사상의 중요성이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의 현대사박물관은 특정 방향으로 정치적 정당성과 정체성을 주입하고 창출하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역사 발전 과정들을 단선적인 역사 서사로 왜곡하여 억지 맞춤으로 구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성공’ 신화에 어울리지 않는 역사적 삶을 영위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자기도취적’ 전시 구상은 횡포이자 억압일 뿐이다. 현대사박물관은 방문객들에게 다원주의적 역사상을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생애사가 지닌 더 넓은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한다. 역사에 대해 하나의 명확한 답을 받아 오는 곳이 아니라 많은 새 질문들과 관심들을 가지고 나가는 곳 말이다.
둘째, 현대사박물관은 20세기 한국의 비극적 과거사와 그로 인한 희생과 피해를 주변화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 주도의 역사박물관이기에 더욱더 지난 시기 파괴적인 국가범죄와 정치폭력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현재로 이어지는 그 역사의 무게를 전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즐겨 말하는 대한민국의 ‘감동’과 ‘자랑’, ‘단합’과 ‘격려’의 ‘한목소리’는 국가대항전이 열리는 축구장에서나 가끔 내는 것이지, 역사적 성찰과 비판적 역사의식의 소통 공간인 현대사박물관의 몫이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개관 일정을 중단·연기하고, 현대사박물관을 다원적 역사상의 소통과 성찰적 역사의식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동기/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
한국은 논의없이 MB 임기맞춰 개관
“단선적 역사아닌 다원성 반영해야” 이명박 정부 들어 극심했던 역사 교과서 논쟁과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5·16 쿠데타 언급 등에서도 보듯, ‘역사 논쟁’은 단지 지난 일들에 대한 시각 차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치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현재의 지향, 미래의 전망과 직접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역사를 정치권력의 충돌 속에 나부끼는 영역으로만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계간지 <역사비평> 편집진과 역사문제연구소 안팎의 학자들이 꾸린 ‘역사정책기획단’은 최근 “어떤 정권교체에도 퇴행하지 않을, 역사에 대한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역사비평> 99·100호에 ‘전환기의 역사정책’을 제안했다. <한겨레>는 이들이 내놓은 역사정책 과제들을 앞으로 네 차례 매주 학술면에 소개한다. 첫 회로 ‘졸속’ 논란을 낳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진단하고, 이어 동아시아 역사 갈등과 역사 교과서 논쟁, 과거사 청산·기록물 관리, 남북 역사교류와 문화재 정책 등을 짚어본다. 시작은 비슷했다. 1982년 10월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집권하자마자 현대사박물관을 짓겠다고 공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8년 집권 직후 같은 구상을 제시했다. 보수 정당인 기민련 소속의 콜 총리 앞에는 13년간의 좌파 사민당 내각이 있었고, 이 대통령 앞에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다. 앞선 시기 어렵게 정착된 비판적 역사의식과 성찰적 역사문화에 맞서 두 보수 정치가들이 내세운 명분은 유사했다. 콜 정부는 서독의 ‘성공’과 ‘민족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내세웠고, 이명박 정부는 현대사박물관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의 성공과 기적’을 내외에 과시하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같지 않았다.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독의 수도 본에 위치한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 집’의 경우, 이미 1983년 건립계획이 제시되었지만 1994년에야 개관했다. 10년여 동안 토론하고 수정하고 다시 토론하며 민주적 합의 과정을 밟았다. 서독의 비판적 역사가들과 좌파 야당의 정치가들은 정부 주도의 현대사박물관이 결국 인위적인 관제 역사상과 이데올로기적 정체성 강화에 복무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며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역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언론들도 앞다투어 문제점을 지적했고, 연방의회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결국 1986년을 전후해 콜 정부는 비판을 수용하며 전시 구상의 조정에 나섰다. 사민당 계열의 비판적 역사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위촉됐고, 다양한 대안적 주장들도 수합돼 민주적 합의에 이바지했다. 개관은 몇 년 늦어졌지만 전문가들의 지지와 시민사회의 동의에 기초해 얻은 성과는 작지 않았다. 국내외 수많은 방문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현대사박물관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독일연방공화국역사의 집’ 전시와 운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다원적 관점의 유지와 개방성, 전시 내용에 대한 정부의 개입 금지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주체들은 건립 과정과 전시 구상 모두 비민주성과 관료적 폐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학자들이나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공개적 토론 과정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 임기 안에 무조건 개관하겠다는 당파 정치적 발상도 경악할 노릇이다. 야당을 비롯한 비판적 시민사회도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진영 논리에 갇혀 ‘권력을 되찾으면 우리가 다시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안이하며 오만하다.
지난 8월15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최한 광복절 기념행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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