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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4년 지나도 녹슬지 않은 손매
쌍용차 해고자 ‘희망 1대’ 조립

등록 2013-05-12 20:35

“공장으로 돌아가자!” 12일 경기도 용인의 한 자동차공업사에서 열린 ‘에이치(H)-2만 프로젝트’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용인/박승화 <나·들> 기자 eyeshoot@hani.co.kr
“공장으로 돌아가자!” 12일 경기도 용인의 한 자동차공업사에서 열린 ‘에이치(H)-2만 프로젝트’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용인/박승화 <나·들> 기자 eyeshoot@hani.co.kr
쌍용차 조립 ‘H-2만 프로젝트’
시민 기부로 장만한 차 해체
H축에 바퀴 달고 볼트 조이고
엔진 결합 차체 씌우고
재바른 손놀림으로 완성
“공장으로 돌아가자” 소망 실어

‘아빠’는 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지난 4년간 줄곧 입고 있던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다. 주현(6)이는 가방에서 파란 하늘색 색종이를 꺼내 들었다. “아빠가 자동차를 만드니까, 저는 비행기를 만들 거예요.” 주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주현이 아빠 오석천(41)씨는 2008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해고됐다. 오씨는 4년 만에 자동차 공장에서 차를 만들 때 입는 작업복을 입고 딸 앞에 섰다. “기분이 참 묘하네요.” 오씨는 멋쩍게 말했다.

12일 오전 9시 경기도 용인의 한 자동차공업사. 오씨와 같은 작업복을 입은 이들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4년 만에 자동차를 다시 조립해보려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엔진, 의자, 문짝, 배터리, 범퍼, 바퀴, 각종 볼트와 너트…. 공업사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품이 정돈돼 있었다. 쌍용차가 2003년 생산한 자동차를 해체하면서 나온 부품들이다. 이 자동차는 쌍용차 해고사태를 해결하려고 지난해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꾸린 ‘쌍용차 희망지킴이’가 기부금을 모아 마련했다. 해고노동자들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노동의 현장을 잠시라도 재현해주려는 시민들의 정성이 모였다.

“공장으로 돌아가자!” 오전 10시 구호를 외친 문기주(54)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이 자동차 뼈대와 같은 에이치(H) 프레임에 녹을 없애주는 ‘솔벤트’를 분사했다. 이날 작업의 시작이었다. 자동차의 묵은 때를 지우자, 해고노동자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에이치 프레임에 바퀴를 달고 볼트를 조였다. 다시 그 위에 엔진을 결합하고 차체를 씌웠다. 해고자들은 쌍용차 공장에서 일하던 때와 같이 자신이 맡은 위치에서 부품을 조립해 나갔다. 자동차 공장에서처럼 기계화된 공정을 하지 못한 탓에 작업 속도는 느렸지만,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던 손이 쉰 지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이들에게 지난 시간은 큰 문제가 아닌 듯했다. 엔진을 결합하던 윤충열(45)씨는 “시민들이 마련해준 부품으로 자동차를 다시 만들어보자고 했을 때 솔직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 손이 녹슬지 않았을까’ ‘작업 방법을 잊어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손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머리로 배웠다면 잊어버렸을 텐데, 몸으로 습득한 일이다 보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을 하는 것 같아요.” 윤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2008년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까지 17년 동안 쌍용차에서 자동차 조립을 담당했다.

회사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쌍용차 도장(색 입히고 건조하는 과정) 라인에서 14년 동안 조립·도장 작업을 해온 김대용(43)씨는 “4년 만에 다시 자동차를 조립하니 회사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난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공식 이름은 ‘에이치(H)-2만 프로젝트’다. 영어로 마음을 뜻하는 단어(Heart)의 첫글자 ‘에이치’와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인 ‘2만개’에서 따왔다. 해고노동자들이 2만개의 부품을 모아 자동차를 만들고 이를 시민에게 기증하는 행사다. 다시 일하고자 하는 쌍용차 해고자들의 마음을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취지다. 완성된 차는 예술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외형을 새롭게 단장한 뒤 6월7일 서울광장에서 공개되고, 차가 필요한 시민이나 단체의 사연을 받아 기증할 예정이다.

해고노동자들은 이날 평소 늘 꿈꿔온 자동차 조립에 나섰지만, 진짜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작업 장소가 쌍용차 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쌍용차에서 부품 공급 일을 해왔던 김성진(42)씨는 소원을 담아 말했다. “지난 4년간 복직 투쟁을 하면서는 이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는데, 참으로 새롭네요. 밝은 표정들도 오랜만이고. 하루빨리 복직돼 이들의 웃음을 오래도록 봤으면 좋겠습니다.”

용인/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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