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분석에 쓰이는 시약을 특정 업체한테서 납품하도록 하는 대가로 수억원대 뇌물을 받거나 자신이 세운 가상의 유통업체를 통해 시약을 납품하게 한 뒤 차액을 가로챈 충북 청원군 오송읍 소재 국립보건연구원 직원 4명과 납품업체 관련자 등 모두 8명이 기소됐다.
대전지검 특수부(부장 이정호)는 시약 납품업체 운영자 김아무개(39)씨와 공모한 뒤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2010년부터 지난 3월까지 현금과 신용카드 사용대금을 더해 각각 3억원과 1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등)로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원 김아무개(31·여)씨와 조아무개(29·여)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에게 뇌물을 건넨 납품업체 운영자 김씨도 사기와 뇌물공여 혐의로 함께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가짜 시약을 납품하도록 한 뒤 실제 시약을 받은 것처럼 속여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대금 4억9000만원을 받아챙겼다. 업체에서는 파란 색소를 물에 타 진짜 시약처럼 속여 납품했고, 연구원들은 가짜 시약을 다음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업체에 되돌려주기까지 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국립보건연구원 무기계약직인 이들은 업체로부터 받은 금품으로 명품 가방 등을 산 것으로 드러났으며, 국립보건연구원은 이들을 모두 직권면직 처분했다.
또 검찰은 국립보건연구원 보건연구관 천아무개(40)씨가 또다른 납품업체 영업사원 연아무개(37)씨와 짜고 2009년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노로바이러스 진단 시약을 질병관리본부에 납품하면서 자신이 설립한 가상의 유통업체를 거치도록 하는 수법으로 1억9000만원을 챙긴 혐의(뇌물수수 등)로 구속 기소했다. 천씨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시약 1개를 42만원에 납품받을 수 있는데도 자신의 업체를 거치도록 한 뒤 110만원에 납품함으로써 시약 1개당 차액 68만원씩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그는 2010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시약이 실제로 납품되지 않았는데도 대금 4억5000만원이 업체에 지급되도록 하기까지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천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정호 대전지검 특수부장은 “연구원들이 경쟁입찰을 무시하고 특정 업체를 선정해 시약을 납품받는 이른바 ‘선납’을 통해 금품을 받아왔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시약 납품을 검수하는 절차가 2012년 4월까지는 아예 없었고, 검수 절차가 마련된 뒤에도 시약의 품명·수량만 확인할 뿐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 이런 범행이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시약을 비롯한 물품 구매 관리 전산시스템을 오는 9월까지 개선하고 재고량을 정기 점검하는 등의 개선책을 내놨지만, 허술한 관리로 10억원 가까운 국고 손실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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