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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권양심님 vs 김뻔뻔님

등록 2013-10-16 15:13수정 2013-10-18 10:11

꽃을 받는 경찰과 질문 공세를 받는 경찰. 권은희(왼쪽)와 김용판은 이렇게 전혀 상반된 인물이지만 공통점도 많다. 둘 다 고시 출신인데다, 권은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김용판은 석사를 마쳤다.한겨레 정용일, 신소영.
꽃을 받는 경찰과 질문 공세를 받는 경찰. 권은희(왼쪽)와 김용판은 이렇게 전혀 상반된 인물이지만 공통점도 많다. 둘 다 고시 출신인데다, 권은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김용판은 석사를 마쳤다.한겨레 정용일, 신소영.
[숨은 차이 찾기] ‘국정원 댓글 사건’ 권은희 vs 김용판
닮은 곳 하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 의외로 공통점 많네

사람매거진 나·들 바로가기
올 한 해 끊임없이 ‘뉴스’를 몰고 온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서로 경계의 다른 편에 서게 된 두 경찰이 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그 주인공이다. 닮은 곳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김 전 청장은 1990년 32살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권 과장은 25살인 2001년 사법고시에 붙었다. 두 사람 모두 경찰로 첫 사회 경력을 시작하지 않은 것도 똑같다. 김 전 청장은 행시 합격 이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정보분석 업무를 1년7개월 동안 한 뒤 경찰로 이직했다. 권 과장은 사법연수원을 나와 2004년 충북 청주에서 약 1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2005년 경찰공무원 특별채용에서 8.9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경정 계급으로 채용된 첫 여성 경찰이었다. 대학원 전공도 같다. 김 전 청장은 영남대 경제학과를 나왔지만 석사과정은 한양대 행정대학원 법과대학에서 마쳤다. 권 과장은 전남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경찰 생활을 하면서 지난 2월 연세대 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같은 대학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국정원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 권 과장과 김 전 청장에 대한 평가는 서로 갈린다. 그 스펙트럼은 넓다. 권 과장은 “경찰의 마지막 양심을 지켰다”는 찬사와 “조직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동시에 듣는다. 김 전 청장은 “추진력과 조직장악력이 뛰어난 사람”에서 “개인을 위해 조직을 이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두루 받는다.

조직을 위한 경찰관 vs 자기를 위한 경찰관

이 중 권 과장이 “조직을 배신했다”는 평가와 김 전 청장이 “개인을 위해 조직을 이용했다”는 평가는 서로 만난다. 두 평가를 합쳐보면 국정원 사건으로 경찰이 겪은 내홍을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드러난다.

‘권 과장은 김 전 청장이 자신을 위해 이용한 조직을 배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권 과장은 경찰의 마지막 양심을 지켰다.

권 과장은 ‘윗선’에 잘하는 법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어떤 조직에나 있는 충성 경쟁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 과장과 함께 수서경찰서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은 “권 과장은 윗사람한테 굳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게 경찰조직에선 이상한 일이긴 하다. 모두 하는 일을 안 하니까 간부들 중에는 권 과장을 꺼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했다. 권 과장이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일할 때 부하 직원 한 명이 길게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권 과장은 빈손을 메우기 위해 직원 책상에 앉아 직접 실무를 봤다. 일선 경찰서에서 과장이 자기 부서의 실무를 직접 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권 과장에게 조직은 윗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국정원 사건 수사 당시 세상은 경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권 과장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수사를 진행해나갔다. 수사 기간에 수사팀과 철야근무를 했다. 체력이 떨어져 남몰래 몇 차례 수액을 맞고 오기도 했다. 1월 중순, 한참 지쳐 있던 권 과장을 만난 자리에서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이 맞냐”고 물었다. 그때 권 과장은 “수사기록에는 수사관 이름이 들어간다. 그 명예를 더럽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국정원 사건 은폐 의혹을 수사한 검찰도 수서서 수사팀에게만은 박수를 보냈다. 지난 6월17일 이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수서서는 열악한 인원으로 한발 한발 묵묵히 수사해 (사건을) 하나씩 밝혀갔고, 게시글 상당수를 확보했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낸 것을 비롯해 수서서 수사팀의 노고와 열정, 치열한 노력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권 과장은 ‘김용판의 조직’을 배신하는 대신 ‘일선 수사관의 조직’을 지킨 것이다.

상표권 출원 번호 4020110020183은 ‘주폭’이다. 이 상표권의 출원자는 ‘김용판’이다. 김 전 청장은 2011년 4월15일 주폭에 대한 상표권을 개인 명의로 등록했다. 주폭은 ‘주취폭력’의 약자로 술을 마시고 행사하는 폭력을 의미한다.

그가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 뒤 일선 경찰들은 주폭 척결에 매달렸다. 서울지방경찰청 산하에는 31개 주폭전담팀이 신설됐고 너도나도 주폭을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됐다.

이같은 김 전 청장의 ‘주폭 척결’은 경찰 내부적으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술을 마시고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행패를 부리는 골칫거리를 ‘법’의 이름으로 구속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주폭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이라기보다 오히려 경찰이었다. 그들에게 함부로 대했다가는 경찰이 공권력을 과잉 행사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는 주폭을 그냥 두고 견디기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김 전 청장의 주폭 척결은 경찰의 민생고를 해결해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찰은 그동안 자신에게 행패를 부린 주폭을 손쉽게 잡아들일 수 있었다. 김 전 청장은 주폭 척결을 주장하며 언론도 충분히 활용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김 전 청장의 주폭 척결에 호응하듯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이라는 기획 기사를 연일 내보냈고, 경찰은 주폭 보도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김 전 청장의 주폭 척결이 공적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경찰 간부는 “김 전 청장이 사심 없이 주폭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주폭 상표권까지 등록할 필요가 있겠느냐. 자기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공조직을 동원한 모양새가 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흔들리지 않는 배짱 vs 흔들리지 않는 똥배짱

김용판(왼쪽)은 자신을 위해 조직을 ‘이용’했고, 권은희는 진실을 위해 조직을 ‘배신’했다. 두 사람의 평판은 경찰 내부와 외부에서 정반대로 엇갈린다.한겨레 이정우, 이종근.
김용판(왼쪽)은 자신을 위해 조직을 ‘이용’했고, 권은희는 진실을 위해 조직을 ‘배신’했다. 두 사람의 평판은 경찰 내부와 외부에서 정반대로 엇갈린다.한겨레 이정우, 이종근.

김 전 청장은 지난해 5월 취임식에서 “서울에서 주폭 1천 명만 잡아들이면 세상이 확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취임 한 달여 만에 주폭 100명을 구속했다. 엄정한 법 집행의 칼날이 노숙인 등 무직자에게만 집중됐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추진력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김 전 청장의 굳건함은 국정원 사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15일에도 드러난다. 그날 저녁 김 전 청장은 서울 구로경찰서 서장 등 경찰 간부와 서울 구로구의 한 중식당에서 만찬을 벌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 전 청장은 아무런 동요도 벌이지 않았다. 아주 평온해 보였다”고 말했다. 대선을 좌지우지할 민감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조직의 총책임자는 그 큰 발표를 앞두고도 느긋했다.

김 전 청장을 흔들 만한 사람도 없었다. 경찰조직 안에서 김 전 청장의 유일한 상관은 행정고시 동기인 김기용 경찰청장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상하관계라기보다 라이벌로 보는 경찰이 많았다. 한 경찰 간부는 “김 전 청장은 김기용 청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던 5월, 김 전 청장은 서울과 대구에서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그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였다. 김 전 청장은 2012년 10월에 출간한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6개월 넘게 지난 뒤에 열었다. 뜬금없는 출판기념회에 대해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했고, 결과적으로 이번 정권에 기여한 김 전 청장을 쉽게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반면 권 과장은 끊임없이 흔들림을 당했다. 지난해 12월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국정원 직원 김씨의 오피스텔 앞에는 권 과장이 있었다. 오피스텔 앞에 있던 사람들은 경찰이 바로 방 안에 들어가 수사하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권 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김씨의 오피스텔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 권 과장은 야당과 일부 시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국정원 수사가 본격화된 뒤로는 국정원과 여당의 비난이 잇따랐다. 경찰 지휘부도 권 과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 2월 초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서울 시내 경찰서의 과장들을 모두 인사이동한 것이다. 권 과장은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서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를 빌미 삼아 강제로 국정원 수사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 정도면 눈치를 볼 만도 했다. 하지만 권 과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 결과 발표가 있던 지난 4월18일, 권 과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사건 수사에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다음날 오전에 공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권 과장만 뚝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권 과장을 흔들려는 이들도 고집이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9월26일 권 과장에게 ‘서면경고’를 내렸다. <한국일보> 9월25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를 문제 삼은 서울지방경찰청은 권 과장이 이 인터뷰를 미리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국정원 사건 관련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개인적 판단과 견해를 발표했다고 경고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9월17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권 과장과 인터뷰한다는 사실을 알렸고, 권 과장은 보도가 나오기 하루 전인 9월24일 상부에 ‘보도 예상 보고’를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권 과장이 인터뷰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고, 언제 인터뷰 기사가 나올지 보고를 받아놓고도 권 과장에게 경고를 내렸다. 보도가 나온 지 단 하루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힘들지 않았을 리 없었다. 서울 송파경찰서로 발령을 받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만난 권 과장은 “힐링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에서 손을 뗀 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진공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도 권 과장은 국정원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 8월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선 권 과장은 “광주의 경찰이냐?” “마음속 대통령은 문재인 아니냐?”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수준 낮은 질문을 들으며 양심을 시험받아야 했다. 국정원 사건 수사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청문회 자리에 나온 10여 명의 경찰은 권 과장의 반대편에서 권 과장을 고립시켰다.

권 과장은 늘 고비를 만났다. 그때마다 만난 권 과장은 항상 “힐링 중”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흔들리고 다시 치유받으면서 그는 진공의 시간을 견뎌냈다.

떠는 나침반 vs 죽은 나침반

고 민영규 전 연세대 교수는 <예루살렘 입성기>라는 책에서 ‘흔들리는 것들’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지난 뒤 국정원 사건에 등장한 김 전 청장과 권 과장을 세상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땅에 붙어 한쪽만을 가리키는 죽은 지남철과 항상 흔들리면서도 정방향을 찾기 위해 여린 바늘을 떠는 지남철 중 무엇이 우리를 옳은 곳으로 데려갈지 판단하는 일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글 정환봉 <한겨레> 사회부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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