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간병하던 남편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져 하반신 마비
자녀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미안하다” 유서 남겨
자녀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미안하다” 유서 남겨
뇌졸중과 디스크 등 병고에 시달리던 노부부가 자식들한테 부담이 되기 싫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3일 오후 3시36분께 전남 목포시 산정동 한 주택에서 남편 김아무개(82)씨와 아내 신아무개(69)씨가 숨져 있는 것을 사위 ㄱ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위 ㄱ씨는 경찰에서 “김장 김치를 전해드리려고 찾아갔는데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현관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도 인기척이 없었다. 닫힌 방문을 억지로 열었더니 두 분이 누운 채로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부부가 숨진 방에는 연탄 2장이 들어 있는 화덕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부부가 평소 생활하던 거실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고, 식탁 위엔 미리 준비한 듯 하얀 봉투에 담긴 유서 한 장과 부부의 영정 사진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남편 김씨가 쓴 유서에는 “(아내가 병이 났을 때) 생을 마감하기에 너무 이르다 싶어 몇달 정도 본 뒤 생사를 결심하기로 하고 오늘까지 왔다. 아내가 아프고 나도 아파서 같이 죽기로 했다”고 적혀 있었다. 유서에는 또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아내 신씨는 지난 2월 허리 통증이 심각해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간병하던 남편 김씨도 다음달 뇌졸중으로 쓰러져 하반신이 마비되는 등 부부가 모두 병고에 시달려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부부는 2011년 노년층 관객을 울렸던 추창민 감독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오는 자살 장면을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강풀 원작의 만화를 영화화한 <그대를 사랑합니다>에는 70대 노부부가 달동네 허름한 방에서 연탄을 피워 세상과 이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 중에서 남편 군봉(송재호 분)은 평생을 사랑한 아내 순이(김수미 분)가 치매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눈물겹게 지켜보다 ‘자신이 먼저 떠나면 아내를 누가 돌볼까’를 고민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린다.
경찰은 “부부가 지난 20일 큰아들한테 보일러의 연탄불을 피워달라고 했다. 큰아들은 곧바로 보일러를 가동했고, 21일 저녁에도 전화를 걸어 ‘따뜻하냐’고 안부를 전했다”며 “부부가 보일러와는 별도로 화덕을 구해 연탄불을 피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슬하에 5남매를 둔 부부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목포의 달동네인 산정동에서 거실 한 칸, 방 한 칸인 작은 주택에서 생활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목포 중앙파출소 강민원 경위는 “사건·사고를 많이 경험하지만 여태껏 본 현장 중에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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