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민주당 ‘증거 조작’ 공방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뒷모습)을 상대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된 중국 외교문서를 보여주며 조작 여부를 캐묻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영사관 파견요원 어떤활동 하기에
영사자격 활동하며 정보보고서
주문자 원하는 대로 맞춤 작성
출처불명 첩보도 사실처럼 포장
1986년 김양기 사건 등
국정원 ‘간첩 만들기’에 활용
검찰 “증거능력 있다” 법원에 제출
영사자격 활동하며 정보보고서
주문자 원하는 대로 맞춤 작성
출처불명 첩보도 사실처럼 포장
1986년 김양기 사건 등
국정원 ‘간첩 만들기’에 활용
검찰 “증거능력 있다” 법원에 제출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핵심적인 2건의 중국 공문서를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을 통해 받았다는 국가정보원의 주장과 달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이들 문서는 ‘외교 경로’를 거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국정원에 더욱 짙은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선양에서 활동하는 국정원 국외파트 직원이 중국 공문서 위조에 개입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중국 선양은 북한 접경 지역으로, 동북아에서 첩보전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한국·북한·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의 첩보원들이 밀집해 있다. 국정원 국외파트 직원 가운데는 영사관에서 소속과 신분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이른바 ‘화이트 요원’도 있지만,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 요원’도 있다.
19일 이재승 건국대 교수의 논문 ‘어두운 시대의 소송기술’과 과거 간첩사건 판결문 등을 보면, 국정원 국외파트 직원들이 첩보 활동뿐만 아니라 국내 간첩사건 수사 등에도 관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핵심 고리는 ‘영사증명서’다. 국외 영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들은 외교부 정식 직원은 아니지만 대사관 영사 자격으로 활동하면서 간첩사건 등 관련 정보를 모아 작성한 영사증명서를 국정원 본부, 검찰에 제출한다. 출처 불명의 의문스러운 첩보들을 수집해 영사증명서를 발행하면 마치 ‘증명’된 것처럼 포장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도 국정원은 지난해 9월께 피고인 유우성(34)씨의 2006년 5월27일 전후 북한-중국 출입경기록 등을 영사증명서에 첨부해 검찰에 제출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실제로 영사증명서는 간첩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6년 김양기씨 간첩조작 사건이다. 조작한 내용만 다를 뿐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판박이다.
김씨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재일 공작지도원 김철주씨에게 국내 학원·민심동향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해 전달한 혐의(옛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986년 5월 기소됐다. 기소 한달 전 국정원(당시 안기부)은 김씨의 자백 말고는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주일 한국대사관 홍아무개 영사(당시 안기부 직원)의 영사증명서를 당시 수사중이던 보안사에 건넸다. 내용은 김철주씨의 상세한 인적사항 등과 함께 김양기씨의 간첩활동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이 영사증명서는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문서에는 김철주씨가 8살 때인 1952년에 총련 선전부장으로 일했다는 비상식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는 반면 김철주씨가 1979년부터 총련을 탈퇴한 사실은 빠져 있었다. 김양기씨는 1987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형이 확정됐지만, 이후 재심을 거쳐 2009년 7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재승 교수는 논문에서 “영사증명서는 주문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제작된 맞춤 문서이며, 영사증명서의 묘수는 ‘증명해야 할 것’을 ‘증명된 것’으로 둔갑시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영사증명서는 수사관(국정원 직원)의 의견에 불과하고 영사증명서의 내용은 검찰의 공소장처럼 증명돼야 할 쟁점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영사증명서가 증거 능력이 있다며 여전히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고 있다. 2006년 옛 민주노동당 내부정보 등을 북한에 넘긴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서 검찰은 피고인들의 차량과 주택, 소유 업체 등에 관한 주중 대사관 이아무개 영사의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때 검찰은 주중 대사관의 공인이 찍혀 있지 않은 영사증명서 내용에 대해서도 증거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국정원이 영사증명서에 첨부해 검찰에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기록 등은 발급기관이 어디인지도 써 있지 않았다. 검찰은 발급기관 관인 등이 포함된 정식 공문을 제출하라고 국정원에 요청했고 지난해 9월26일자 화룡시 공안국 관인이 찍힌 문서를 다시 제출받았다. 검찰은 또 유씨와 변호인 쪽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의 정황설명서가 합법적으로 작성된 게 아니라는 내용의 중국 삼합변방검사창(세관)의 답변서를 영사증명서와 함께 12월께 국정원으로부터 받았다.
검찰은 이렇게 공식 외교라인을 거치지 않고 국정원을 통해 받은 중국 공문 2건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는데, 중국 정부는 이 문서들이 모두 위조됐다고 밝혔다. 국외의 국정원 직원이 보낸 문서를 믿는 관행이 계속되다 결국 ‘증거 위조 사건’이라는 대형 사고를 낳은 셈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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