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수사·재판’ 검증 사각지대
가명 쓰고 재판장에 거짓말도
가혹행위 등 언론에 노출 안돼
가명 쓰고 재판장에 거짓말도
가혹행위 등 언론에 노출 안돼
국가정보원이 간첩 사건 증거를 조작해 법정에 내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데는 이 사건 재판이 ‘국가 안보’를 빌미로 비공개로 진행된 점도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공개 재판은 수사·기소 내용과 각종 증거자료에 대해 외부의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11일 간첩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유우성(34)씨 변호인단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해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수사관 5명 가운데 4명은 본명을 밝히지 않았다. 4명 가운데 3명은 사전에 재판부에 가명을 쓰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다른 한명인 ㄱ씨는 별다른 말 없이 가명을 썼고, 신분 확인 과정에서 재판장이 “실명이 맞냐”고 묻자 “맞다”고 대답했다. 몇 차례 문답이 오간 뒤에야 검찰이 “실은 가명이다”라고 실토했다. 재판부까지 속인 것이다. 변호인단 관계자는 “일반 재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도 재판부도 간첩을 수사하는 수사관들이라는 이유로 기본 절차를 소홀히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들은 수사관들의 증인신문을 공개하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간첩 수사 관련 사항이 노출되면 안 된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비공개로 진행했다. 수사관들은 기본 업무에 관한 사항도 대체로 진술을 거부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국정원 직원의 신분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국정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국정원 수사관은 사법경찰관이고 언제든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은 외부의 감시를 받지 않았다. 유씨 변호인단은 “유씨 여동생을 수사하면서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정원 수사관들이 여동생에게 반말을 하거나 등에 ‘화교’라고 쓴 종이를 붙인 사실 등을 법정에서 시인했는데,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언론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항소심에서 국정원·검찰은 중국 공문서들을 “공식적인 루트로 입수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고, 국가 안전보장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국가의 안녕 질서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증인신문을 비공개로 하면, 헌법에 보장된 공개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해당 증인의 증언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공개 결정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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