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새벽 장성 효사랑병원 화재로 숨진 간호조무사 김귀남(52)의 영정 /안관옥 기자
간호조무사 김귀남씨 질식사
딸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 엄마” 오열
딸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 엄마” 오열
“어제도 통화했단 말이에요. 오늘 만나기로….”
28일 오전 광주시 광산구 신가병원 영안실. 이날 새벽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이하 효사랑병원) 화재 사고로 숨진 간호조무사 김귀남(52)씨의 딸 노진화(32·초등학교 교사)씨는 홀연히 떠나버린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없이 오열했다.
“이럴 수는 없어요. 이따 만나기로 약속을 했잖아요. 엄마~.”
김씨는 딸이 결혼한 지난해 가을부터 아들 진수(29·학생)씨와 함께 살았다. 오늘은 모처럼 모녀가 만나 함께 목욕도 하고 정담도 나누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김씨가 야근 중 환자들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모녀의 소박했던 약속은 지상에선 영원히 이룰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김씨는 이날 효사랑병원 별관 2층의 당직자로 환자 34명을 돌보았다. 화재 당시 입구 쪽 데스크에 있던 김씨는 비상벨이 울리자 연기가 나는 복도 건너편 3006호실 쪽으로 뛰었다. 3006호실의 문을 열어 불길을 확인한 뒤에는 5m쯤 떨어진 옥내 소화전으로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자 이번에는 환자들을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빠져나온 사람들로 바깥이 혼잡해지자 동료들을 찾아 준비할 사항들을 알려준 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민호 담양소방서장은 “김씨가 불길을 잡으려 했고, 이후에 환자를 데리고 계단을 두차례 왔다 갔다 했다. 2층에서 대피한 생존자 6명 중 적어도 2명을 구한 셈”이라고 말했다.
연기가 자욱한 2층으로 올라간 김씨는 이미 통로와 병실에 가득 찬 유독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가 건물로 진입한 소방관에게 발견됐다. 김씨는 분홍색 간호복을 입은 채로 광주 신가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2006년 남편과 사별한 김씨는 젊은 시절 간호 분야 근무 경험이 있어 요양원과 재활원 등으로 자주 봉사활동을 다닌 적도 있다. 성격이 밝고 힘든 일을 도맡는 성격이었다. 진화씨는 “내가 결혼하자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셨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진수씨는 “엄마는 내세우거나 하지 않는 분이었다. 나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친척 사이에도 효녀로 소문이 나 있었다. 2009년 전남 광양에 살던 어머니가 치매를 앓게 되자 지난 1월 돌아가실 때까지 4년 동안 주말마다 찾아가 극진하게 수발을 들기도 했다.
늘 자신을 낮췄던 김씨는 이날도 당직자로서 ‘환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다 ‘딸과의 약속’을 이루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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