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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노숙인 꾀어 돈벌이하는 요양병원

등록 2014-06-25 18:12수정 2014-06-25 21:20

인천ㅂ병원, 노숙인을 ‘보호사’ 고용
서울역 노숙인·쪽방 거주자 찾아가
“거저 먹고 재워준다, 함께가자” 회유
환자로 입원시켜 보험급여 타
가두고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도
시민단체, 복지부조사 촉구 계획
옛 서울역 청사 앞 광장에서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노숙인들. 한겨레 자료사진
옛 서울역 청사 앞 광장에서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노숙인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3월 어느날 새벽 6시께. 서울 영등포역 맞은편 편의점 앞에 앉아 있던 노숙인 ㅁ아무개(48)씨 쪽으로 건강한 체격의 두 사내가 다가왔다. “따뜻하고 편한 곳이 있으니 함께 가자. 소주도 사주겠다”고 했다. ㅁ씨가 올라탄 차에는 이미 세 명의 노숙인이 앉아 있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인천에 있는 ‘ㅂ요양병원’.

서울역 근처 쪽방에서 살던 윤아무개(50)씨가 지난해 10월 찾은 곳도 같은 병원이다. 한때 알고 지내던 김아무개씨가 이 병원의 ‘보호사’라는 직책을 달고 찾아왔다. 김씨는 “병원에 가면 공짜로 숙식을 제공하고 석달만 지내면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일용직인 윤씨는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왔다. “술이 좋긴 하지만 병원에 갈 정도의 몸상태는 아닌데 입원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김씨는 “하루에 소주 5병 넘게 마시지 않으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얘기하라”고 귀띔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의 원장은 윤씨한테 두툼한 문진표를 건네며 “되도록 상황이 심각하게 보이는 쪽에 표시를 하라”고 했다.

서울역·영등포역 등에서 노숙인들을 꾀어 병원에 입원시킨 뒤 정부에서 돈을 받아내는 한 요양병원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른바 ‘사회적 입원’이다. 25일 ㅂ병원 입원환자들과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 병원은 그동안 현행법을 어겨가며 노숙인을 환자로 끌어들인 뒤 정부에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ㅂ요양병원 실정법 위반 혐의
인천 ㅂ요양병원 실정법 위반 혐의
이런 사회적 입원은 요양병원의 ‘일당정액제’라는 규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병원은 개별 진료행위마다 수가를 매기고 그 비용을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이 분담한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평균 비용을 산출해 미리 정해진 비용을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받는다. 요컨대 입원환자가 많을수록 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요양병원은 입원환자 1명당 중증도에 따라 하루 입원료로 1만880~4만4880원을 받는다. 한달에 환자 1명당 30만~130만원대의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특별한 치료 행위를 하지 않아도 돼 요양병원으로선 노숙인이 내야 할 입원료 20%를 떠안아도 80%를 남길 수 있는 ‘수지 맞는 장사’다.

요양병원의 이런 현행법 위반 행위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곽순헌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입원할 때 노숙인이라고 따로 표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입원 규모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법은 불특정 다수한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노숙인들이 많이 있는 곳에선 이들을 차에 태워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일이 흔하다. 주변 파출소나 노숙인 지원센터도 특별히 단속이나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 파출소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거나 피해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병원 차량이 보여도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노숙인한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고 보험급여를 받아내는 건 부당 급여 청구로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때론 요양병원 안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이뤄지기도 한다. ㅂ 병원에선 말을 듣지 않는 노숙인을 독방에 가두고 결박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간혹 환자가 몸부림치면 건장한 남성 ‘보호사’가 폭행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 ㅂ병원에 입원했던 김아무개(35·여)씨는 외출해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감금·폭행을 당했다. 김씨의 알코올 수치가 높게 나오자 곧바로 남자 보호사 두 명이 그를 독방으로 끌고 갔다. “결박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고 몸을 비틀며 저항하자 보호사 한 명이 무릎으로 배를 누르고 뺨을 여러차례 때린 뒤 안정제 주사를 놨다.”

피해자들이 말하는 ‘보호사’는 요양병원엔 둘 수 없는 직책이다. 그러나 ㅂ병원은 규정에도 없는 보호사라는 직책을 두고 그 자리에 노숙인 출신을 고용했다. 홈리스행동과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은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보건복지부에 ㅂ병원 현지조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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