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의 위안부 기림비. 이 기림비는 미국에서 7번째로 세워짐. 연합뉴스
국립국어원, ‘종군 희생 여성 추모비’가 적절하다 외교부에 권고
국립국어원(국어원)이 ‘위안부 기림비’ 대신 ‘종군 희생 여성 추모비’ 등의 용어를 쓰자고 외교부에 권고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외교부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학계와 시민단체는 마뜩잖다는 반응이다.
국어원은 지난달 23일 ‘위안부’는 일본군의 인권 유린 등의 의미를 명확히 나타내지 못하니 ‘종군 성노예’또는 ‘종군 희생 여성’으로, ‘기림비’는 보통 뛰어난 업적이나 위대한 사람을 훌륭하다고 할 때 쓰이기 때문에 ‘추모비’나 ‘추념비’ 등으로 바꿔줄 것을 외교부에 요청했다.
최근 유엔(UN)에서도 일본에 ‘위안부’ 대신 ‘강제 성노예’를 쓰라고 거듭 권고하면서 국내에서도 ‘성노예’를 써야 한다는 의견이 다시 제기됐지만 정부·학계·시민단체 모두 조심스러운 태도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성노예’가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내긴 하지만 당사자들이 끔찍한 표현이라며 원치 않는다. 말이라는 게 약속인데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는 학계와 시민단체가 합의했고 많이 쓰는만큼 그대로 쓰는게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당 부처인 여성가족부와 외교부는 국어원의 권고에 대해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1993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하면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공식 용어로 쓰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도 1993년 ‘제2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정한 뒤 이를 줄곧 쓰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 할머니들이 역사적으로 위안부로 불렸다는 점에서 작은따옴표(‘’)를 붙이고 범죄 주체인 일본군을 앞에 붙인 말이다.
국어원은 일반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적당한 언어가 있다면 고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국어원 공공언어과의 김문오 학예연구관은 “‘위안부’가 역사적 용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고쳤듯 지금 상황에 맞춰 더 적합한 용어로 고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기림비 역시 일반인들은 위안부 만행을 기린다는 등의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니 ‘추모비’나 ‘추념비’, ‘넋 기림비’등이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6월15일, 22일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도 <한겨레> ‘말글살이’칼럼에서 “‘위안부’의 피해와 일제 만행은 잊지 말고 규탄할 일이지 기릴 대상이 아니”라며 국립국어원의 대체어 권고안에도 나와있는 ‘추념비’와 ‘불망비’등을 제안했다.
국어원이 ‘위안부’ 대신 권고한 ‘종군(從軍) 성노예’ ‘종군 희생 여성’도 논란이 인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종군’이란 표현이 ‘군을 따르다’는 자발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쓰지 않고 있다. 국어원 쪽은 “‘종군’은 ‘따르다’는 능동의 의미도 될 수 있지만 끌려간다는 피동도 가능하다. ‘종군’ 뒤에 성노예, 희생 여성이라는 표현도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따른다는 해석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무총리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의 정혜경 조사1과장은 “보통 ‘종군’을 자발적인 뜻으로 생각하지 동원됐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 ‘종군 위안부’를 일본이 유리하게 쓰다보니 할머니들의 거부감도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14일을 ‘위안부 기림일’을 제정한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쪽은 국어원이 ‘위안부’라는 용어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선미 정대협 팀장은 “‘기린다’는 표현이 할머니들의 용기와 넋, 희생 등을 기린다는 뜻에서 쓰자고 한 것인데 국어원이 이런 맥락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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