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박예지양의 어머니 엄지영씨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든 채 희생자 가족들과 만나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종교계·각계 원로 ‘범사회적 소통 기구’ 제안
“여·야 정치권에만 더이상 맡겨둘 수 없어”
새정치 ‘3자 협의체’ 공식 제안…새누리 거부
“여·야 정치권에만 더이상 맡겨둘 수 없어”
새정치 ‘3자 협의체’ 공식 제안…새누리 거부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여야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종교계와 법조계 등이 나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더이상 여야 정치권에만 이를 맡겨둘 수는 없다는 사회적 자각으로, 세월호 특별법 타결을 위한 사회적 중재기구 탄생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런 노력과는 별도로 새정치민주연합은 24일 새누리당에 세월호 정국 돌파를 위한 방안으로 여·야 그리고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유가족들은 환영했지만, 새누리당은 “대의민주주의의 훼손”이라고 일축했다.
사회 원로와 전문가들은 종교계나 사회 원로들이 중심이 되어 여야와 유가족들까지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중재 공간을 만들어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설 것을 제안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려온 이해동 목사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우선 종교계가 당연히 중재에 나서야 한다. 천주교나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도 책임있는 분들이 동참하길 바라고, 제가 비록 2선으로 물러나 있지만 필요하다면 나서 도울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사회 원로나 종교계 대표들이 여야 정당의 책임있는 대표자들을 불러 대화의 장을 만들고,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며 “종교계 대표들이 가족들의 요구를 대변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여야가 가족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헌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도 “여야가 함께 나서서 유족을 끌어안고 소통해야 한다. 중재를 위한 공간에는 시민사회 인사도 야당 성향 사람들만이 아니라 폭넓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을 참여시켜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좀더 구체적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에 대해서 유족들이 많은 신뢰를 갖고 있어, 강 주교가 그런 중재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강우일 주교는 지난 20일 모친이 계신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주변 인사들에게 “이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폭넓게 나서서 세월호 특별법을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유가족 간의 대화에 앞서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자세 변화가 있어야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모두가 4월16일부터 ‘이번만은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도 당시의 겸허한 마음, 사건 직후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선거가 끝났으니 문제가 소멸됐다고 받아들이는 건 착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세월호 문제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정부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칼자루는 그 조사 대상이 쥐고 있다”며 “유가족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양보하지 않는 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권의 양보를 촉구했다.
“수사·기소권 줘도 문제없어…초유의 사고, 초유의 해법 필요”
전직 대법관·검찰출신 여당의원도
“진상조사위를 법률가 중심 구성
피해자 직접 구제만 막으면 돼
사법체계 얽매이지 말고 풀어야” 새누리 일부 의원들 연찬회서
“대통령이 유가족 면담 나서야”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이 나서줄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4선의 중진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3일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당 의원 연찬회 자유토론 자리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0일 단식하다 입원했는데, 그 힘없는 사람이 박 대통령을 만나겠다는데 경찰들이 막는 모습은 이해가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야 하고, 김영오씨 병실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당이 ‘법치주의를 뒤흔든다’며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유족들의 요구사항(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법조계의 권위있는 해석은 물론, 현직 여당 의원의 공개 발언도 나오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한 전직 대법관은 “결국 유가족 주장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문제”라며 “여당은 이게 ‘자력구제(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행위) 금지’라는 우리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고 주장하는데, 자력구제가 되지 않도록 진상조사위 구성에 법률가 자격이 있는 사람을 넣고 진상조사위에서 업무영역을 나눈다든지 해서 유족들이 직접 수사권,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초유의 사태인 만큼 초유의 해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의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은 당 의원 연찬회에서 “기소권과 수사권을 (진상조사위에) 절대 줄 수 없다는 식의 논의 테두리 안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해결) 안 된다”며 “진상조사위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준다는 혁신적인 사고를 하더라도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진상조사위 전체를 (현실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법률가로 구성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정 의원은 “(특검으로 하더라도) 우리가 특검 추천권을 2명 다 유족에게 줘도 된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수사 결과에서) 난도질당할 것도 없을 것”이라며 “이제 규명할 것은 공무원이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 김희중 광주대교구장(대주교)은 “기존의 법체계에서만 하려면 왜 특별법이라고 하겠느냐”며 “특별법이란 처음부터 진상을 밝히기 위해 기존 법 체계를 넘어서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한 것인데, 그때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이냐”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한홍구 교수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반론인데, (해방 직후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전례가 있다. 당시엔 수사권·기소권뿐 아니라 재판권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헌 송호균 김규남 기자 minerva@hani.co.kr
광화문선 시민들 동조단식 행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동참한 많은 시민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농성장에 모여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청운동선 유족들 “청와대 응답하라”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이 24일 오후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소망이 담긴 편지를 접어 만든 종이비행기를 농성장 주변 경찰차벽 너머 청와대를 향해 날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진상조사위를 법률가 중심 구성
피해자 직접 구제만 막으면 돼
사법체계 얽매이지 말고 풀어야” 새누리 일부 의원들 연찬회서
“대통령이 유가족 면담 나서야”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이 나서줄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4선의 중진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3일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당 의원 연찬회 자유토론 자리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0일 단식하다 입원했는데, 그 힘없는 사람이 박 대통령을 만나겠다는데 경찰들이 막는 모습은 이해가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야 하고, 김영오씨 병실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당이 ‘법치주의를 뒤흔든다’며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유족들의 요구사항(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법조계의 권위있는 해석은 물론, 현직 여당 의원의 공개 발언도 나오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한 전직 대법관은 “결국 유가족 주장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문제”라며 “여당은 이게 ‘자력구제(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행위) 금지’라는 우리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고 주장하는데, 자력구제가 되지 않도록 진상조사위 구성에 법률가 자격이 있는 사람을 넣고 진상조사위에서 업무영역을 나눈다든지 해서 유족들이 직접 수사권,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초유의 사태인 만큼 초유의 해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의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은 당 의원 연찬회에서 “기소권과 수사권을 (진상조사위에) 절대 줄 수 없다는 식의 논의 테두리 안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해결) 안 된다”며 “진상조사위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준다는 혁신적인 사고를 하더라도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진상조사위 전체를 (현실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법률가로 구성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정 의원은 “(특검으로 하더라도) 우리가 특검 추천권을 2명 다 유족에게 줘도 된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수사 결과에서) 난도질당할 것도 없을 것”이라며 “이제 규명할 것은 공무원이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 김희중 광주대교구장(대주교)은 “기존의 법체계에서만 하려면 왜 특별법이라고 하겠느냐”며 “특별법이란 처음부터 진상을 밝히기 위해 기존 법 체계를 넘어서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한 것인데, 그때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이냐”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한홍구 교수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반론인데, (해방 직후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전례가 있다. 당시엔 수사권·기소권뿐 아니라 재판권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헌 송호균 김규남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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