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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크레용팝이 노조 파업 현장서 노래한 까닭?

등록 2014-09-04 17:13수정 2014-09-04 17:46

걸그룹 크레용팝이 지난 3일 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집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금융산업노동조합 제공
걸그룹 크레용팝이 지난 3일 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집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금융산업노동조합 제공
금융노조 집회에서 공연…20분 동안 ‘빠빠빠’ 등 불러
걸그룹이 노조 파업 현장에 선 것은 사상 처음 ‘화제’
[기자 수첩]

걸그룹 크레용팝이 노조 파업 현장에 나타나 ‘총파업 투쟁’ 간판 앞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3일 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총파업 집회에섭니다. 이 소식은 3일 저녁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크레용팝 근황’ 등과 같은 제목으로 널리 퍼지며 화제가 됐습니다.

걸그룹이 노조 파업 집회에서 공연한 것은 사상 최초입니다. ‘촛불 문화제’ 등에서 공연이 이뤄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체로 집회 이전부터 해당 이슈에 공감해 온 대중 음악인들이 합류해 집회 주제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표명한 경우였습니다. 이번처럼 ‘파업 집회’에 소녀들로 이뤄진 걸그룹이 ‘행사를 뛴’ 적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레용팝이 한때 극보수 사이트인 ‘일베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던 그룹이라는 점도 누리꾼들의 관심을 끈 이유입니다. 크레용팝 소속사는 논란이 일었던 당시 어떤 정치적 성향도 없다며 부인했습니다만, 어쨌든 ‘노조’나 ‘파업’과는 거리감 있는 이미지인 것은 분명합니다. 크레용팝만이 아니라 모든 걸그룹이 거리가 멀겠지요.

이날 총파업에 돌입한 금융노조는 기업은행, 산업은행, 국민은행 등 시중 은행 직원들이 모인 노조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의 산별 노조입니다. 비슷하게는 양대 노조라고 할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이 있는데, 여기는 증권, 보험사, 협동조합 등 제2금융권 위주로 꾸려져 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집회가 열렸다. 금융산업노동조합 제공
지난 3일 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집회가 열렸다. 금융산업노동조합 제공
시중 은행 직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던 2000년 이후 14년만입니다. 관치금융 철폐, 낙하산 인사 척결, 일방적인 금융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금융 공공기관 정상화’를 기치로 구조조정 및 임직원 복지 삭감에 나선 까닭입니다.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은 “새 정부는 주요 은행 인사를 주무르고 입맛에 따라 구조조정을 일삼았다. 금융 ‘산업’이 아니라 사금융 수준이다. 금융 산업이 후진적인 이유는 정부와 사용자(회사) 탓이 크지만 결과는 조합원들에게 전가된다”고 은행 직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면 크레용팝은 어떻게 이 파업 현장에서 공연하게 됐을까요?

집회일인 3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집회는 오전 9시부터 5시까지였습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인원은 경찰 추산 1만명, 주최 측 추산 4만명으로, 종합운동장을 꽉 채우기엔 다소 부족한 인원이었습니다. 크레용팝은 행사 마무리 즈음인 오후 4시께 등장해 20여분간 히트곡 <빠빠빠> 등을 비롯해 4곡을 불렀습니다.

나기상 금융노조 교육문화홍보본부장은 “노동조합 투쟁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을 현장으로 유도하고 끝까지 남아있게끔 고안한 방안으로,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콘텐츠를 집회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 노동조합 집회가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에도 변화를 주자는 차원에서 걸그룹을 섭외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는 겁니다.

수많은 걸그룹 중에서 하필 논란의 소지가 있는 크레용팝을 선정한 것이 의도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 금용노조는 고개를 젓고 있습니다. 나 본부장은 “장소 섭외나 무대 셋팅 등을 진행하는 기획업체에 예산 내에서 젊고 발랄한 코드(의 대중가수)를 섭외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어떤 그룹이 섭외될지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며 “저 역시 행사 전날(2일)에서야 크레용팝이 출연 예정인 사실을 알았고, ‘일베’ 논란이 있는 그룹이라는 것조차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노이즈 마케팅’ 주장에 대해서는 “의도치 않은 면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고 난감해 했습니다.

크레용팝 소속사도 당황이 되긴 마찬가집니다. 크롬 엔터테인먼트에선 “섭외 당시 ‘금융노조 축제 한마당’ 행사명으로 계약했다. 파업이라는 것은 현장에 도착해서 알았다”며 “10월 정규앨범 발매를 앞두고 활동을 재개한 시점에 예전 ‘일베 논란’까지 다시 불거져나와 당황스럽다”고 밝혔습니다.

3일 파업 집회에서는 시작 당시부터 “오후엔 걸그룹 크레용팝이 공연 예정이니 끝까지 참여해 지켜봐달라”는 방송도 나갔다고 합니다. 파업 집회 참여율은 그다지 높지는 않았습니다. 금융노조 쪽에서는 “지점장이 직접 파업에 참여하는 직원에게 전화해 인사상 불이익을 이야기하는 등 파업 방해가 이뤄지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는 ‘귀족 파업’으로 몰아가는 한편, 정부가 은행별로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면서 일부 은행은 동의하고 6개 은행만이 남은 상태여서 (파업 참여율이) 저조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로 금융 공기업인 기업은행, 산업은행 직원들이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 등 일반 시중 은행들의 파업 참가율은 저조했습니다. 총파업 참가 인원이 많지 않았고 마침 비가 오는 날이라 은행을 찾은 고객들도 많지 않아, 시중 은행도 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요 은행들이 구조조정되며 생사의 기로에 몰렸던 2000년에는 불법 집회였지만 6만5000여명이 참여했던 반면, 올해는 합법 집회임에도 국책 공공기관 중심으로 (비교적 적은 인원이 참여해) 투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걸그룹 섭외 ‘고육지책’에 한 몫을 한 셈입니다.

정유경 기자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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