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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폭력 피해 = 성적 수치심’ 이대로 괜찮을까?

등록 2014-10-08 16:59수정 2014-10-08 21:51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는 캐디(경기 보조원). 한겨레 자료 사진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는 캐디(경기 보조원). 한겨레 자료 사진
‘성폭력 피해를 구성하는 성적 수치심,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여성민우회 포럼 개최
“내가 터치한 데 대해 성적수치심 등을 느낀다든지 했으면 나인 홀까지 가겠나.”(박희태 전 국회의장)

“라운딩 중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신체 접촉을 당했다.”(피해자 캐디)

 

성폭력 여부를 판단할 때 ‘성적 수치심’은 핵심적인 감정이 됐다. 성폭력 행위의 잘잘못을 가릴 때 가해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것은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충분히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호소한다. 이런 양상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그러나 과연 ‘성적 수치심’을 성폭력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볼 수 있을까? ‘성폭력 피해자=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등식에 의문을 제기한 토론회가 8일 열렸다.

이날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성폭력 피해를 구성하는 성적 수치심, 이대로 괜찮은가?’ 포럼에서 발제자 정하경주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을 판단할 때 성적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느낄 만한 행위인지 아닌지에 대한 공방이 아니라 권력 관계를 이용한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성적 침해 여부가 성폭력 성립의 중요한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태 전 의장의 성추행 사건에 적용하자면, 캐디가 ‘성적 수치심을’정말 느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손님에게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캐디와 전 국회의장이라는 가해자의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른 성추행 자체를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장의 성폭력 피해 상담 활동가들은 그간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토록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성폭력은 중대한 범죄’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보통 상담할 때 피해자와는 성적 수치심을 중점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성폭력 사건이 외부로부터 인정이 필요할 때 수치심을 얘기해왔다”고 말했다. 명백한 강간 또는 강제추행이 아니라 피해 여성에게 일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피해자는 수사기관 등에 전략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호소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성적 수치심’을 다시 문제제기 하게 된 건 성폭력 피해자가 응당 성적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라는 사회적 맥락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하 활동가는 “성폭력 사건에서 수치심의 사전적 의미인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로 인해 느끼는 마음’을 느껴야 하는 건 정작 가해자인데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껴야만 하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감정은 분노·짜증·공포·우울 등 여러 감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성적 수치심만이 성폭력 피해의 대표적인 감정으로 꼽힌다는 점도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The Female Face of Shame(수치심의 여성적 얼굴)’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는 손희정씨는 “공포·분노·혐오·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데 이 모든 감정들이 ‘수치심’으로 치환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감정과 신체의 상태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교육 받는다”며 “그걸 수치의 언어로 치환해야만 적극성이 탈색되고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한계점을 실제 법률로 적용을 하려면 난관이 많다.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조인섭 변호사는 “성적 수치심을 뺀다면 일반폭력과 다름 없이 다뤄져 엄격한 양형 기준이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는 용어로 완전히 대체하기도 어렵다”며 “가해자의 행위만을 남겨 판단한다면 명백하지 않은 성폭력 행위는 더 판단하기 어려워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독일도 행위로만 따져 성폭력을 규정하는데 성범죄의 범위를 좁힐 수도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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