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훈 전 이비에스(EBS) 세계지리 강사. 사진 박대훈 강사 제공
어떻게 해서 문제가 틀린 사실을 알게 됐나요?
“지난해 수능이 끝나고 청산도에 쉬러 내려가 있었어요. 그런데 한 학생에게 전화가 왔어요. 아무래도 문제가 틀린 것 같다고. 당시 청산도 슬로시티엔 피시방이 없었어요. 완도까지 나가서 문제를 확인했어요. 처음엔 문제가 틀린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했더니 그 학생이 억울해하면서 유럽발 재정위기 등을 다루는 기사에서 (문제와 상충하는) 해당 데이터가 나왔다는 거에요.
아시겠지만 세계지리를 선택한 학생들은 교과목에 대한 애정이 높은 학생들이에요. 보통은 학교에서 지정해 주는 선택과목을 그냥 공부하고, 대개 (일선학교에서) 세계지리는 잘 선택하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직접 선택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이 과목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바람직한 현상이죠. 아무래도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다큐나 시사보도도 좋아하고 챙겨 보고요. 그 학생이 수능 치르기 전에, 토요일 밤에 방영해 주는 시사 프로그램인가를 봤대요. 그런데 거기서 ‘한·중·일 FTA가 타결되면 나프타, 유럽연합(EU) 다음 가는 세 번째 경제권이 된다’고 얘기하더래요. 그래서 이 학생은 나프타가 유럽연합보다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고, 수능 답지에서 ㄷ항부터 지우고 남은 답 중에 고르려고 하니 결과적으로 답이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 거에요.”
(세계지리를 선택한 수험생 3만7000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 문항에서 오답 처리됐다.)
소송을 내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데이터를 확인해 보고, 동료들(지리학과)에게 물어보니 문제 오류가 확실했어요. 고민을 했어요. 아무래도 지리 과목이 바닥이 좁아서 서로 다 얽혀 있는데, 가뜩이나 저는 소심하고 나약한데… 얼마 전에 영화 <제보자>를 봤는데, 완전 감정 이입해서 봤어요. 따돌림당할 수도 있다는 거, 고민했어요. 그리고 제가 한들 뭐하겠느냐. 세계지리 유료강의에서 저보다 더 수강생이 많은 다른 강사도 있는데, 그분이 하면 되지, 생각했죠. 그런데 조용하더라고요.”
그런데 소송까지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런데 큰일에는 항상 전조 현상이 있다고… 2012년에도 평가원이 낸 9월 모의평가에서 9번 문제가 오류가 난 적이 있었어요. 인구센서스 자료를 착각해서 낸 문제였는데,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원자료와 다르게 쓴 거짓 보도자료를 냈어요. 그때는 모의평가니까… 하고 그냥 넘어갔었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그랬어요. 제가 온라인 강의에서 이 문제를 해설하면서 ‘나중에 설마 수능에서 오류 생기면 그때는 내가 소송도 불사할게’ 이런 말을 했었나 봐요. 그러면서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래서 (문제 오류를 지적하는 해설) 동영상을 올렸어요. 이 문제는 오류라고. 그래도 제가 선생이니까, 제가 오류라고 해주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올렸는데, 사흘 만에 평가원에서 이상 없다고 반박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평가원 쪽 사람이 제가 강의하는 회사에도 이것저것을 물어봤던 것 같더라고요. 이 바닥이 좁으니 친한 친구를 통해서도 회유가 들어왔어요. ‘다친다, 그거 하지 마라’ 그런데 그게 없었으면, 그런 말을 안 들었다면 끝났을 문제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약한 저인데도 굴복하기 싫었어요. 대들고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다친다는 말엔) 굴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는 기자도 없었고, 무작정 한 언론사(경향신문)를 찾아갔어요. 그 다음부터는 잘 알려진 얘기에요. 보도가 나가고, 소송이 진행되고…”
그 뒤로는 회유가 들어오지 않았나요?
“신문에 보도된 뒤로는 오히려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회사 쪽에서도 싫어했나요? 광고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제가 굉장히 소심한 편이기도 하지만 (머뭇거리며) 아마 회사에서는 자꾸 회사 이름까지 거론되는 걸 탐탁치 않아 하시는 것 같아요. 수능 문제 오류 동영상도 회사 메인페이지에서는 내렸습니다. 저는 계약 강사일 뿐이에요. 내년까지 계약기간이고요. 보도 때도 회사 이름은 빼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 때문에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보도가 늘어나면서 힘들었겠습니다.
“11개월 동안 정말 힘들어서 매일 매일 후회했어요. 보도에 ‘생계를 작파하고’ 소송에 매달렸다는 표현이 있는데, 강의를 그만뒀다는 뜻이 아니라, 강의를 하면서 예전만큼 열정을 들여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스토리텔링 식으로 강의하는 타입이에요. 다른 선생님이 1분 가르칠 것, 30분이 걸려 가르쳐요. 좋은데, 이건 재미가 없으면 안돼요. 흥이 나서 강의해야 하는데, 강의 도중에 자꾸 지난해 (소송을 한)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아이들이 상처받을 거란 생각 드니까 올해는 흥이 안 났어요. 자연히 강의가 어두워졌죠. 자꾸 비관적인 이야기나 하고 있게 되고. 내가 생계를 포기한 게 아니라, 생계를 망쳤다는 말이 정확할 겁니다. 재판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쫓아다니고, 교수님들에게 자문 구하러 지방에도 가느라… 이기고 엊그제부터 마지막 강의를 시작했어요. 강의하면서 1년 동안 이랬던 걸 이야기하니까(잠시 울먹임),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강의를 우울하게 했다,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데 미안하다 그런 생각하니 울음이 났습니다.
평가원에는 이번 소송에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저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영리를 목적으로 강의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래서 꼭 100% 순수하게 아이들을 돕겠다는 마음만은 아니겠지만,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처음엔 유대인을 이용해 돈 벌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은 유대인들을 구하게 되고 마지막에 그들에게서 감사의 선물을 받으면서 참회의 통곡을 하잖아요. 소송에 이기고 나서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59명을 다 데리고 갔더라면… 조금이라도 내가 더 우겨 볼걸….
(소송에서 학생 59명이 원고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에서는 22명만 남아 소송을 계속 진행했다.)
그런데 그렇게 가자고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일부에선 ‘봐라, 괜히 시간만 뺏기고. 그 시간에 재수 준비를 해라’ 그러고 말리는데,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확신 줄 방법이 없었어요. 대학이 다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현실상 청소년기를 대학 하나만 보고 살아온 애들인데. 그 애들에게 대학이 다가 아니라고 해도 먹히지 않고. 그런 아이들이 사회에서 처음 겪는 게 부조리라면…. 문제 오류가 고의는 아니지만, 부주의했던 거라면 사과를 하고 대책을 세우든 대응을 하든 해야지, 선고하자마자 상고심을 고려한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평가원은 3심 항소를 검토중이다.)
소송 비용도 사비를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비용은 밝히기 어렵지만, 수백만원 수준이었어요. 변호사들이 공익 소송이라고 보고 큰돈을 받지 않으셨어요. 임윤태 변호사님, 김현철 변호사님 등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혼자 소송을 진행하며 동료들에게 섭섭한 것은 없었나요?
“교사들이 나서기 어려운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학회는 다 찾아다녔는데 학회에서는 못 해주겠다고 했지만, 전국 지리교사 모임에서 의견서를 제출해 줘서 (재판에) 반영이 됐습니다. 일선 교사들은 격려해주기도 했어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달라진 수능 스타일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어요. 이번 오류 문제는 전형적인 학력고사형 선지예요. 예전에 EBS 강의를 연계하지 않았을 때는, 그런 선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 수능이 적성검사형 같았다면, 요즘은 학력고사 형으로 스타일이 달라졌어요. 검토 과정에서도 너무 EBS 출제를 맹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승소 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1심에서 지고는, 아이들을 결과적으로 두 번 좌절시켰다는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항소하자는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학생들이 ‘2심 가면 좋겠어요. 2심도 선생님이 도와주실 건가요?’하고 묻더라고요. 그러면 왜 안 도와주겠느냐, 하고 22명이 따라왔어요. 그 뒤로는 수능 결과대로 정시하고 재수하고 하는데, 제가 먼저 연락을 못 하겠더라고요. 스승의 날에 연락이 오면, (재수하느냐 등은 묻지 못하고) 어떻게 지내니, 하면 ‘하향 지원했어요’ ‘반수 할 거에요’ ‘재수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먼저 말해줬어요. 그러면 올해 시험 본다는 학생들에게는 연락을 안 했고, 대학 간 친구들에게만 10월 16일이 선고일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겼어요. 전 너무 떨려서 오히려 법원을 못 가겠더라고요. 3점 떨어져 원하는 학교보다 하향지원해 합격했던 한 친구가 가서, 카톡으로 중계방송을 해줬어요. ‘선생님, 방금 판사가 1심 판결을 취소한다고 하는데, 이긴 건가요?’ 법원이, 원고들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너무 시일이 지나 구제가 어렵다는 판결을 할까 봐 전 너무 걱정했는데, 깨끗하게 이긴 것이에요. 이어서 재수하던 학생들도 소식을 듣고 문자를 보냈고, 이긴 거 맞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했어요. 22명에 들어가지 않았던 37명도 연락이 왔어요. ‘저희는 대상이 안 되는 건가요.’ 그래서 기다려 보자고 했어요. 소송으로는 구제받을 수 없지만, 교육당국에서 전향적 조처를 취한다면 희망이 있지 않으냐는 말을 해줬어요. 그런데 평가원이 상고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들이 다시 힘이 쭉 빠졌어요. ‘선생님, 그러면 이제 우리 군대 다녀와서 결론나는 건가요?’ 평가원이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