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소방본부 소방관들이 17일 밤 주변을 통제한 채 손전등으로 판교 테크노밸리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성남/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아내와 바람 쐬러 나갔다 화를 당한 부부가 바로 제 옆에 있었어요”
저는 이번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참사 당시 그 위에 같이 올라가 있다 간신히 난간을 잡고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환풍구 올라선 사람들 탓이라고? ‘공공디자인’ 관점에서 보면…’라는 기사(▶ 바로 가기)를 보고 메일 보냅니다. 지금도 여러 장면이 떠올라 일을 할 수가 없네요. 그 40대 중년 부부(▶ 관련 기사 : “암 수술한 아내와 바람 쐬러 나갔다가 그만…”)가 바로 제 옆에 있었으니 더 가슴이 아픕니다.
사고 직후 사무실 와서 사고 뉴스를 보니 30분 정도 지났는데도, 벌써부터 ‘올라간 사람들이 잘못이다’라는 글들이 베플로 올라오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내려오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다”, “(관람객들이) 그 위에서 방방 뛰었다”라고 잘못된 말들까지 덧붙여졌습니다. 올라가면 안 될 곳에 올라간 대죄를 전제로 잘못된 사실들을 추가하여 희생자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라는 제지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내려오지 않았다던지, 사람들이 소리치고 방방 뛰며 춤까지 췄다는 등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날(지난 17일) 오후 5시쯤부터 환풍구 쪽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행사 당일에는 낮 12시부터 공연장 근처에 천막과 부스가 설치돼 여러 기업이나 한의원, 야구단, 과학기술진흥원 등에서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근처 회사 직원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행사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행사는 오후 5시 시작이었지만, 5시 10분~20분께에야 처음으로 사회자가 올라왔던 것 같아요. 사회자가 나온 후 분위기를 띄우고 간단히 행사 소개를 하면서 “오늘 행사가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 한 마디 빼고는 환풍구 쪽에 대해 이렇다 할 코멘트를 하지 않았고요, 행사 진행하는 사람들이나 안전요원들이 와서 내려오라는 말을 한 적은 아예 없었습니다.
제가 화단과 환풍구 쪽으로 올라갔을 때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서 있었고, 난간 쪽에 초등학생을 비롯해 10명 남짓한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포미닛 공연이 시작되고 급속히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그 와중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남자분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중간에 내려가신 것 같습니다.
제가 올라오고 얼마 안 되어 그 40대 중년 부부가 올라오신 걸 기억합니다. 남편분이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의자를 가지고 올라오셔서 부인분을 앉히셨어요. 보통 부부의 모습보다도 다정한 모습이라 신기해서 유독 기억에 선명히 남았고… 뉴스를 보니 돈독했던 부부라고 알게 되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분도 요 근처 경비원이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경비원처럼) 잘 아는 사람들도 거기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특히 위에서 사람들이 뛰었다고 그러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방송 같은 데서 전문가들이 나와 ‘안전기준을 지켰더라도 성인 남성 여럿이 방방 뛰면 위험하다’는 식으로 환풍구 위에서 뛴 것을 전제하고 말하곤 하는데, 당시 사고 현장은 차분히 구경하는 분위기였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구경을 나온 30~40대 직장인들이었는데요. 방방 뛰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만약 성인 남성들이 방방 뛰는 분위기면 그 와중에 의자 가져오고 부인 앉히고 앉아있고 그럴 수 있었겠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점점 늘어서 전 환풍구 가장자리로 옮겨 가게 됐어요. 까치발 들며 보는 사람들 때문에 가리기도 하고, 또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 때문에 휘청거릴 때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서 같이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기엔 공연이 한창 진행중이라서 제 말을 아무도 들을 것 같지 않아서 혼자 조금 떨어져 서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에 왼쪽 뒤를 보니, 희생자들이 환풍구로 빨려들어가고 있었어요. 저도 조금씩 쓸려 내려갔지만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사무실이 가까워서 평소 그곳이 친숙한 장소였습니다. 평소에도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어요. 사고나서 다친 분들이 근처 직장인이거나 경비원이시거나 그 장소를 잘 아는 분들이시던데, 주변에 계신 분일수록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환풍구 쪽은 상가 안쪽으로 연결된 방향은 어른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았고요, 화단도 연결돼 있어서 아이들도 자주 올라가던 곳이었거든요. 판교 와보셨나요? 이 근처에는 그런 식으로 생긴 화단들이 많아요. 올라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한겨레> 기사에도 쓰여 있듯이, 거기가 전철 환풍구와 뭐가 다른지 잘 몰랐어요. 평지보다야 신경쓰이긴 했지만, 평소에 전철 환풍구는 사람들이 인도로 통행하듯이 다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서 있는 정도로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만약에 누군가 와서 지목하면서 내려가라고 했으면 전 내려갔을 거에요. 올라간 쪽 맞은편, 그러니까 공연장이 바라보이는 방향은 좀 높아서, 어린 학생들까지 올라오기 시작하니 난간에 앉은 학생들은 길 쪽으로 잘못해서 떨어지면 다칠 수도 있겠다 걱정되어서 내려갈까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길 쪽이 아니라 환풍구 안으로, 그냥 서 있는데 그 아래로 수십 미터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 생각을 했다면 누가 올라갔겠어요? 전 거기가 환풍구인지, 그 안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걸 주최쪽이 알기나 했는지부터 의문이에요. (*사회자는 “환풍구와 화단 쪽에 올라선 사람들이 길로 떨어질까봐 내려오라고 한차례 당부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풍구에 올라간 제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일관된 어조로 달리는 댓글들을 보니 제가 그분들(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미약하겠지만요.
정리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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