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년째 공들여온 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사실상 ‘전면 백지화’ 했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 등으로 ‘증세 논란’을 키운 정부가 이를 빌미로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개편 필요성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마련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송파 세 모녀’처럼 소득이 적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덜고, 고소득 직장·지역가입자의 건보료는 높이는 내용이다.
28일 오후2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자실을 찾아 “올해 안에 건강보험료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문 장관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 추가 부담이 있는 근로소득자 등은 불만이 클 수 있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아직 충분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거듭되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만을 우려해 어렵게 마련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내팽개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는 2013년 7월 16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기획단)을 꾸려 지금껏 11회의 전체위원회와 10여회의 소위원회를 열고 기획단 최종 보고서를 채택해 정부에 제출·건의한 상황이다. 이에 맞춰 복지부도 기자단을 상대로 지난달 별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 관련 워크샵을 열어 4~5월 중에 정부 최종안을 채택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1년 반 넘게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사안을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은 최근 연말정산 파동으로 사실상 증세라는 비판을 받은 정부가 건보료로 또 한번 부담을 안을지도 모르자 무작정 연기 방침을 내린 것이다.
복지부는 건보료 체계 개편에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지난해부터 꾸준히 받아왔다. 당초 지난해 9월 안에 정부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해놓고 발표하지 않았고 지난 11월엔 여야가 기획단이 마련한 개선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듣기 위해 토론회를 열려고 했지만 복지부가 개선안을 확정하지 않았다고 해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송파 세모녀의 건보료는 5만여원인데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퇴직하면 피부양자로 건보료를 내지 않는다고 해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은 계속 커져왔다.
다만 복지부는 전체 부과체계 개편안은 올해 안에 추진하지 않는다면서도 지역가입자들의 과도한 보험료 지출은 올해 안에 별도로 개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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