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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습’ 꼬리표만 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등록 2015-02-01 22:09수정 2015-02-02 10:28

[월요리포트]
사회 초년생 진료비 증가
“나도 병원비 좀 썼다”
박수지(26·여) 기자/ 2013년 7월~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차라리 지나가는 차에 치였으면 좋겠어.”

실제로 일어나면 끔찍할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동기들과 주고받았던 건 2013년 9월 무렵 수습기자 2개월째였다. 길어야 4시간 자는 생활에 늘 잠이 부족했다. 일에 쫓겨 식사는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로 대충 때우는 일이 많았다. 종종 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뻗치기’도 해야 했다. 한밤중에 아파트 계단에 앉아 온몸으로 냉기를 빨아들일 때면 ‘이러다간 몸이 성할 리 없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병원에서 쉬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설프게 아팠다간 나만 고생한다는 생각에 혹시나 감기에 걸릴까봐 살얼음판 걷듯 조심하던 날들이었다.

수습 꼬리표만 떼면 모든 게 좋아지리라 여긴 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같은 해 12월 정식으로 부서 배치를 받고 나니 본격적으로 내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써야 했다. 내가 쓴 기사에 소송을 걸겠다는 식의 ‘협박’을 처음으로 들었던 날엔 심장이 떨려 잠이 오질 않았다. 내 이름의 기사를 쓴다는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져 나를 짓눌렀다. 언젠가 친구를 만나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도망가고 싶다”며 울었다. 당장 기사를 못 써서 혼날 때에도 내가 아직 기자로서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입사 초기 길어야 4시간 자고
끼니는 대충 패스트푸드로
기사 불만 ‘협박’ 처음 당하던 날
심장이 떨려 잠이 오질 않았다

취재원들과 한잔, 선배들과 한잔
기자 직업 특성상 잦은 술자리
마시다 보니 주량이 늘었고
덩달아 몸무게도 7㎏이 늘었다

두드러기·목결림·비염·감기 등
어느새 한달에 한번꼴 병원 신세
의료비 지출이 4배나 늘었다
내가 좀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몸은 이전보다 편해졌는데도 자주 아팠다. 마치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하루는 잠에서 깨어나니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기사를 쓸 때 나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던 탓이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정형외과 진료도 받았다. 한번은 얼굴에 두드러기가 갑자기 번져 피부과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 두드러기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전엔 한 번도 겪지 않은 피부 두드러기였다. 면역력이 떨어져 편도선이 붓거나 비염·감기 등으로 병원에 가는 경우가 잦았다. 병을 방치했다가 더 심해지면 감당이 되지 않을까봐 좀 더 서둘러 적극적으로 병원에 간 측면도 없지는 않다.

연말정산 때 확인해 보니, 2013년엔 3만300원(본인 부담금)이었던 의료비 지출이 2014년엔 12만5200원(치과 진료 제외)으로 4배나 늘었다. 잔병은 없다고 자부했는데 어느새 한 달에 한 번꼴(3번→11번)로 병원을 찾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겨레>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한 신입사원들의 평균 진료비 증가율(10%)에 견줘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다. 그러나 언론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는 게 주변의 반응이다.

사실 입사한 뒤 가장 많이 걸린 병이 ‘술병’이다. 평생 마신 술보다 입사 뒤 마신 술의 양이 족히 세 곱절은 넘을 거다. 술자리는 이름을 붙이는 대로 무수히 많이 생겼다. 취재원들과 만나면 술을 잘 마셔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오기도 있었고, 선배들이 주는 술도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마시다 보니 술이 늘었고, 즐기기도 했다. 알코올을 열심히 분해하는 줄 알았던 몸은 체중계 눈금으로 타격을 가했다. 입사 전보다 7㎏이 불어 지난해 12월 건강검진 결과에선 “술을 줄이고 5㎏ 정도 감량하는 게 좋겠다”는 굴욕적인 의사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얼마 전 입사 10년차 선배에게 물었다. 기사도 능숙하게 쓰고 스트레스도 덜할 것 같았다. “10년차 되면 좀 나아져요?” “아니. 더 힘들어.” 음, 아마도 나는 계속 아플 것 같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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