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순방 성과에 등장한 SPC사와
일동제약, 정부 소개로 작년 MOU 체결
올초까지 성과 홍보했지만 중단 상태
‘2000억 의료 수출’ 미래도 불투명
일동제약, 정부 소개로 작년 MOU 체결
올초까지 성과 홍보했지만 중단 상태
‘2000억 의료 수출’ 미래도 불투명
지난해 정부의 주선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제약업체 에스피시(SPC)와 함께 사우디에 항암제 공장을 짓기로 한 국내 제약사가 최근 해당 사업을 중단한 사실이 확인됐다. ‘2000억원대 사우디 의료수출’과 관련해 정부가 국내 제약사 4곳에 소개한 에스피시는 매출 실적이 전혀 없는 ‘정체불명’의 신생·군소 업체라는 사실([단독] ‘2천억 수출 계약’ 상대 사우디 제약사 ‘실체 모호’)이 드러난 가운데, 이 업체가 주도한 ‘한-사우디 항암제 공장 건설’ 사업이 중단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당시 정부는 이를 비롯해 에스피시가 참여하는 4건의 한-사우디 합작공장 건설 계획을 전하며 “2억달러 규모”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11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해 6월25일 에스피시와 사우디 북부 수다이르 지역에 항암제 공장을 짓고 관련 기술을 이전해주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주고받은 일동제약이 올해 초 이 사업을 중단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내 대형 제약업체의 한 임원은 “일동제약이 에스피시와 손잡고 추진해온 수다이르 항암제 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이미 끝난 상황”이라며 “사업 검토 단계에서 까다로운 의약품 등록 심사 절차 등 사우디 의료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이 걸림돌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100% 중단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현재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해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없다”며 “지난해 6월 양해각서를 맺은 뒤 진척이 없는 답보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 중단 경위를 묻자 “양해각서라는 게 원래 확정된 계약과는 다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동제약과 에스피시의 항암제 공장 건설 사업은,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직접 에스피시와 ‘정부-기업’ 간 양해각서를 맺고 주도한 ‘한-사우디 특화 제약단지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복지부는 당시 “한-사우디 제약단지는 사우디 에스피시와 한국 기업이 참여해 사우디 수다이르 지역에 2억달러(2000억원으로도 표기) 규모의 항암제, 수액제, 바이오시밀러(일종의 복제약), 순환기치료제 등 4개 공장을 5년 내 설립하는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4개 공장 설립 프로젝트 가운데 현재 진행되는 사업은 제이더블유(JW)홀딩스-에스피시의 수액공장 건설 건 하나다. 이는 이번에 복지부가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을 계기로 거의 똑같은 내용을 ‘재탕’ 발표한 사업으로 여전히 양해각서 이행 단계다. 애초 에스피시가 한국 정부에 찾아달라고 요구한 건 항암제 공장을 지어줄 한국 제약사였다.
지난해 정부가 “2억달러 규모”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한-사우디 특화 제약단지 프로젝트’가 일동제약의 사업 중단으로 이처럼 ‘껍데기’만 남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의 주요 성과로 소개된 이번 ‘2000억원대 사우디 의료수출’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우디 등 중동 제약시장에 밝은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지 의약품 관련 규정이 대단히 까다롭고 정부의 가격통제가 심한 중동 제약시장의 특성상 이곳을 뚫으려면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 정부와 일부 제약사의 행태는 ‘쇼잉’(보여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특히 정부 부처가 직접 나서서 실체도 불분명한 외국의 민간업체를 끌어들인 뒤 이를 국내 일부 제약업체와 임의로 맺어주는 형태는, 선진국은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에서도 흔한 일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 담당 국장은 정부가 직접 사우디 민간 제약사와 양해각서까지 맺으며 주선한 한-사우디 기업 간 합작공장 건설 사업이 중단된 데에 대해 이날 밤늦게 “민간 기업끼리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진행한 사업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 복지부-에스피시의 양해각서 체결 건은 좀더 파악해본 뒤 답변하겠다”고 밝혀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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