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leebido@daum.net
[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① 희생
① 희생
13살 민이와 또래 신체 표준 비교
다리 골절뒤 누워서 생활 엄마는 우울증·대인기피증
아빠는 사업 실패로 쫓겨 ‘1일 1식’도 못먹는 날 있어
치명적 방임이 부른 슬픔 신체 학대에 이은 치명적인 방임이 이뤄졌다. 민이의 주검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변사자가 식사를 잘 못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건강관리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골절 치료 후 재활치료를 권유받았음에도 받지 않았고 누워 지내게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고하였을 때, 소아방치(child neglect; 소아에게 음식과 물, 주거지, 건강관리, 교육, 정서적 지지 등이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의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부검감정서를 썼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업무수행 지침을 보면 방임은 ‘보호자가 아동에게 반복적으로 아동 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함으로써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재판까지 받았지만 민이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가해자가 친부모이고, 이들이 사건의 공개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민이의 죽음은 물론이고 민이의 존재조차 몰랐다. 민이가 살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2년여 전 이곳에 살던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은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전혀 몰랐다. 이 아파트는 단지가 작아 웬만한 사실은 금방 소문나는데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던 민이네 가족은 아파트 거주인 명단에조차 자신들을 올리지 않았다. 가족이 스스로를 감추고 고립시키는 상황에서 민이를 구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다만 국가가 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차례 있었다. 2007년 민이가 만 7살이 되고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취학통지서를 받을 때였다. 그러나 민이는 전년도에 주민등록이 말소돼 취학통지서를 받을 수 없었다. 민이처럼 거주지가 분명하지 않아 취학통지서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한 해 평균 1000여명에 이른다. 국가는 병역통지서를 받지 못하는 청년은 경찰에 고발해 찾아내지만, 취학통지서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신고할 때까지 방치한다. 민이 동생 현이도 2013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현이 역시 방임으로 인한 학대를 당한 셈이다. 어렵게 살던 민이네 가족은 아빠가 괜찮은 직장을 구하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그러나 살림이 핀 뒤에도 엄마·아빠는 민이를 치료하지 않았다. 부부를 변호한 변호사는 “그때는 이미 아이 상태가 어찌할 수 없는 단계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냥 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2013년 10월 유기치사죄로 4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감옥에 있다. 아빠는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3년간 집행을 유예받았다. 부부는 항소하려 했으나 포기했다. 민이의 죽음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둘째 현이는 뒤늦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곧바로 초등학교 고학년에 편입해 들어갔지만 엄마가 집에서 열심히 공부를 가르친 덕분에 성적은 뒤처지지 않고 있다. 현이는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현이를 맡았던 담임 선생님은 “현이가 언니와 엄마 얘기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해서, 물어보지 않았다”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공부도 썩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빠는 현이와 함께 아내가 석방되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민이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내와 둘째에게도 늘 잊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다만 아내가 아직 아파서 이겨내지 못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그와 기자의 만남은 지난달 2일 비 오는 밤, 그의 집 앞에서 우연하게 이뤄졌다. 짧은 대화 끝에 긴 인터뷰를 제안했고, 긍정적인 답을 얻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둘째딸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빠와 현이는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를 면회하러 교도소에 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납골당에 있는 민이에게 들른다. 최현준 임인택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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