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량씨는 1980년 5월18~27일 광주 상황을 16절지 30여장에 기록했다.
“전두환이 백년을 가겠냐, 천년을 가겠냐? 나중에 흉악한 살인자를 기어이 단죄해야 해. 그렇게 하려면 작은 근거라도 모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광주시민 민영량(73·북구 신용동)씨는 지난 16일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격정적으로 써 내려가던 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민씨는 당시 전남도청에서 500여m 떨어진 동구 동명동 농장다리 근처에 살았다. 당시 38살이던 그는 딸 셋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는 금남로·충장로·계림동 등지를 돌며 ‘5월 광주’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평생 일기를 써본 적은 없어. 당시 공수부대의 잔혹한 모습을 보고 엄청 충격을 받았지. 그래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어.”
민씨는 80년 5월18~27일 열흘 동안의 숨가빴던 광주 상황을 16절지 30여장에 볼펜으로 기록했다. “5월18일. 전대생(전남대생) 500여명이 계엄철폐 전두환 물러가라 민주인사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박차고 나오려는데 공수부대의 무차별 대검으로 배·옆구리·머리 등 닥치는 대로 난자질을 해서….” 그의 일기에는 공수부대의 무차별 구타에 대한 분노, 공수부대의 조준사격에 쓰러지는 시민을 향한 연민 등이 녹아 있다. 날짜별로 군과 시민의 공방전 양상과 희생자 수도 자세하게 적어두었다.
그의 5월27일 일기에는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전 새벽에 울려퍼진 여성의 방송을 듣는 안타까운 심정이 적혀 있다.
그는 이 일기를 20여년 전 큰딸 명옥(45)씨에게 맡겼다. 최근 명옥씨는 누렇게 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딸의 뜻을 전해 듣고 처음엔 “연구한 것도 아니고 후대에 남기겠다고 쓴 것이 아닌데…”라며 손사래를 치다가 동의했다. 민씨와 딸은 이 기록을 언제 어디에 기증할지 검토중이다.
이 일기를 읽은 이상민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적은 원본이고, 35년 동안 훼손 없이 보존돼 기록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5·18 민주화운동 자료 8만1400건 중 시민의 일기는 당시 광주우체국 통신과장 조한유씨가 쓴 것 등 6건뿐이다. 5·18아카이브(기록관) 추진단장을 맡았던 홍세현씨는 “애초 군대·행정·언론 등의 공식 자료를 중시했지만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시민이 직접 쓴 자료가 더 가치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런 일기와 사진을 여럿 모으면 현장과 사건, 시대를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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