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어르신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4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법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만세를 부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무기공장 등에 강제동원돼 중노동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당시 일본 군수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광주고법 민사2부(재판장 홍동기)는 24일 양금덕(84) 할머니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은 서울고법, 부산고법에 이어 세번째다.
재판부는 양 할머니 등 피해 당사자 3명한테 1억2000만원씩, 나머지 1명에게 1억원, 숨진 부인과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낸 유족 1명에게는 1억208만원 등 모두 5억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는 침략전쟁을 수행하려는 일본에 적극 협력해 속임수와 협박으로 13~14살 소녀들을 동원해 강제노동을 시켰다”며 “피해자들은 혹독한 노동에 내몰렸다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차대전 당시 미쓰비시중공업과 현재 미쓰비시중공업이 다른 회사라고 본) 일본 국내법으로 반인도적 불법행위의 배상 채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며 “현 회사가 옛 회사의 재산과 임원 등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만큼 배상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2차대전 때인 1944년 5월 ‘돈도 벌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의 회유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중노동을 해야 했다. 양 할머니는 법정에서 “피해자들 나이가 많아서 시간이 없으니 미쓰비시는 빨리 사죄·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1999년 3월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2008년 11월까지 1·2·3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2012년 10월 국내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전례로 보면 미쓰비시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시간을 끌 것으로 보인다. 확정 판결 뒤에도 이행하지 않으면 보유 재산을 조사해 강제로 집행해야 하는 등 배상 절차가 번거롭다. 피해자들이 80~90대 고령이어서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숨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주/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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