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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아지 리더의 조건

등록 2015-07-10 18:58수정 2015-10-26 17:16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입니다. 이 지면에서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칼럼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원장이 새 칼럼 ‘동병상련’을 연재합니다. ‘동물병원(동병) 안에서 반려동물과 사람이 서로 동정하고 돕는(상련)’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특유의 생생한 현장감은 그대로이고, 기발한 통찰은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우리 병원에는 강아지 여섯마리와 고양이 열마리가 있다. 병원에 온 사람들은 제일 먼저 아이들 중 서열이 누가 제일 높은지를 묻는다. “여기 대장은 누구예요?”라는 질문에 나는 ‘코니’라고 답한다. 코니는 병원에서 산 지 7년 된 열서너살 남짓 된 시추다. 몇년 전 외국에서 방송 촬영차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동물·인간 소통 전문가)가 온 적이 있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코니는 제일 먼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게 안겼는데, 곧이어 그가 우리에게 “자기가 여기의 ‘대장’이라고 하네요”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언뜻 보면 우리 병원은 서열 1위의 우두머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전부터 코니가 ‘리더’일지 모른다는 추측은 했지만 코니가 통상적인 우두머리와는 다른 모습이라 확신이 없었다. 그가 리더를 알아맞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코니 자신도 스스로를 대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언뜻 보면 코니는 흔히 생각하는 우두머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덩치가 크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다. 그렇다고 아이들 밥을 뺏어 먹거나 군림하는 모습도 없다. 하지만 낯선 개가 와서 병원의 개들에게 집적대거나 큰 소리로 짖으며 평화를 깨는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나서는 건 코니였다. 언젠가 병원에 술 취한 남자가 들어와서 시비를 거는데 그때에도 어김없이 코니가 있었다. 20㎏이 넘는 덩치 큰 ‘나나’가 있을 때도, 더 나이 많은 ‘행돌 할아버지’가 있을 때도 코니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작고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가 오면 먼저 다가가 핥아주고 같이 놀아주는 멋진 남자다. 재촉하는 법도 없고 함께 사는 강아지들에게 복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덕분에 병원 아이들은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원만하게 잘 지낸다.

코니를 통해서 나는 ‘리더’는 힘의 논리로 정해지는 게 아님을 배웠다. 강아지뿐 아니라 늑대도 마찬가지다. 늑대의 우두머리인 ‘알파늑대’는 힘의 논리가 아닌 모두에게 위엄을 인정받을 때에 선출된다. 늑대 무리가 리더를 선택하는 기준은 공동체의 생존이다. 무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다는 신뢰가 리더의 첫째 덕목이다.

최근 동물의 왕국에 대한 프로그램이 회자되면서 동물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배신은 사람의 기준과 입장에 따른 가치관이다. 사실 동물들에게 ‘왕’은 없다. 무리를 책임지는 우두머리인 ‘리더’가 있을 뿐. 리더의 길은 고달프다. 현명하게 판단하고 공격적이거나 돌발적인 일원을 잘 이끌어야 한다. 적이나 외부로부터 위험을 느끼는 순간 앞장서는 행동력도 필요하다. 추운 겨울 무리를 위해 홀로 리더가 사냥을 나가고 먹이를 찾으면 무리를 불러 배를 채우게 한다.

리더 늑대가 신뢰를 잃으면 동물 무리는 모두의 동의 아래 새 우두머리를 선출한다. 싸움을 잘하고 힘이 세도 난폭한 늑대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난폭한 리더 때문에 무리를 떠나는 늑대가 늘면 가차 없이 새 리더를 뽑는다. 사람 사이의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강압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힘으로 누르는 리더는 존중받지 못한다.

한집에 함께 사는 강아지들의 경우도 가족 내에 든든한 리더가 있어야만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함께 사는 보호자가 리더로서 신뢰를 주지 못하면 그 아이는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존중할 대장이 없으면 자신이 가족의 리더라고 착각해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을 보일 수도 있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반려동물에게 나는 현명한 리더인지 생각해보자. 또한 나를 통솔하는 리더는 어떤지도 생각해보자. 애정을 가지고 침착하게 구성원을 책임지는 모습이어야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다.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는 행동은 복종을 위한 강압이다. 공포심으로는 그 행동을 잠시 멈추게 할 뿐 교정할 수 없다. 체벌하고 소리치는 행동은 반려견을 예민한 개로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자. 사람도 동물도 마찬가지다. 현명한 리더와 살지 않는 경우는 서로가 불행하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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