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38)씨는 열한살 때부터 부모가 아닌 할머니 손에 자랐다. 김씨는 5년 전 결혼 뒤에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6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더니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결국 일이 터졌다. 할머니의 ‘실수’로 갓난아기인 아들의 손에 큰 흉터가 생겼다. 남편의 불만이 폭발했다. 김씨는 할머니를 친척집에 모시려 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할머니를 모시려고 이혼까지 고민하던 김씨한테 동네 이웃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알려줬다. 할머니는 2등급 판정을 받아 시설 생활이 가능했다. 김씨는 할머니를 시설에 모시는 게 죄를 짓는 거 같아 꺼림칙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난해 4월 할머니를 시설에 모셨다. 그뒤로 주말마다 찾아뵙고 있는데, 지금은 시설에 모시길 잘했다고 안도한다. 김씨는 13일 “집에 계실 땐 무료함을 참지 못해 큰 사고를 치시던 할머니가 시설에선 채소 가꾸기나 가요 부르기 등을 하시며 나름 잘 지내셔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2008년 7월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라 지난해 기준 42만4500여명이 집이나 시설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대상은 65살 이상의 노인이나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병으로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으로, 장기요양 신청·조사 뒤 1~5등급의 장기요양인정을 통보받아야 한다.
2014년 전체 노인인구 대비 인정률은 6.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2.1%의 절반을 살짝 웃돈다. 수급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등급마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른데 특히 1등급은 ‘하늘의 별 따기’로 불린다”며 “인정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정률이 낮은 건 제도 시행 초기인 탓도 있다며, 수치 자체보다 시설요양에 편중된 서비스의 다양화 및 내실화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우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기요양연구센터장은 “일본과 독일은 우리와 제도가 유사하지만 오랜 제도 시행 기간 덕에 누적 인원이 많아 인정률이 10%가 넘는다”며 “고령화와 제도 성숙에 따른 자연증가율을 고려하지 않고 숫자만 높이려 하면 재정 부족 등의 폐단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현종 상지대 교수(의료경영학)는 “한국은 시설요양이 전체의 52%로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재가요양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질을 높이면 정부도 재정 부담이 덜해 이용자를 확대할 수 있고, 이용자들은 집에서 더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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