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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리야, 끔찍해

등록 2015-07-24 20:43수정 2015-10-26 17:15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며칠 전 복날의 일이다. 병원 식구들과 점심을 먹으려는데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놀랐다. 보신탕집 앞에 걸린 ‘똥개 한 마리 60만원’이라는 현수막 사진이었다. 나이 어린 간호사들과 다른 수의사들은 ‘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불쾌했다. 에스엔에스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개를 먹지 않는 추세인데 복날이면 직장 상사가 보신탕집에 데려가서 고민’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동료들은 “그런 직장 상사는 끔찍하다”부터 “개 먹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우린 동물병원에서 일하니까 그런 직장 상사는 없잖아’ 하며 안심하던 중 누군가 물었다. “수의사 가운데 보신탕 먹는 사람이 있을까?” 설마, 개고기를 먹는 동물병원 의사가 있을까. 그건 환자를 잡아먹는 의사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다. 학교 호수에 살고 있던 오리 중 왕따를 당해서 머리를 쪼이고 다리를 다쳐 절뚝이던 어떤 오리를 학생들이 데려와 치료한 적이 있었다. 오리 환자는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오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치료를 시작했다. 짓궂은 일부 수의사는 나에게 “음식도 치료를 하냐”며 놀렸고, 혹시라도 오순이가 다음날 없으면 “누군가가 잡아먹었을 것”이라며 놀렸다. 하지만 오순이는 꿋꿋했다. 따로 지낼 곳이 없어서 큰 개들이 입원한 방 구석에 입원장을 만들어 잠을 잤고, 강아지 사료를 함께 먹었다. 시간이 가면서 오순이는 사람을 따랐다. 밤새 갑갑했을까봐 아침이면 병원 잔디밭에 잠깐씩 풀어주었는데, 내가 움직이면 얼른 뒤따라왔다. 강아지처럼 무릎에 앉아 있기도 하고, 안고 다니면 품에 머리를 기대고 애교를 부렸다. 자기를 협박한 짓궂은 선생들에겐 목을 빼며 소리를 지르고, 예뻐하는 선생님들에겐 따라다니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치료가 끝나고 다시 호수에 방사를 하러 갔지만 무리에게 또 공격을 당한 오순이는 결국 시골에 있는 나의 이모님 댁으로 보내졌다. 이모님 댁에 살던 강아지 흰둥이와 단짝이 되어 한집에서 자고 밥을 나눠 먹는다는 소식에 나는 신기해했다.

더 신기한 건 나의 변화였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도 나는 그 뒤부터 오리고기를 먹지 못한다. 의식적으로 피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거부반응까지 나타난다.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유황오리’ 광고만 나와도 속이 메슥거리고 불편하다. 주위에선 “닭은 먹는데 오리는 못 먹느냐”며 이상하다 말하지만, 정말 그렇다.

개를 먹는 사람들은 개 식용 반대론자들에게 흔히 ‘개는 먹으면 안 되고 소·돼지·닭은 먹어도 되느냐’고 반박한다. 소·돼지보다 개가 우월해서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교감과 관계에 관한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순이를 치료하고 난 뒤에 오리고기만 보면 거부반응이 오듯이, 관계를 맺은 동물과 주고받은 교감이 중요한 것이다. 최근 나온 다큐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나오는 어린이처럼 돼지가 고기로 보이지 않고 친구로 보인다면 ‘식용’하지 못할 테니까.

‘개고기를 먹어온 전통’ 운운하는 것도 어색하다. 네댓 가구 중 한 집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족으로 키우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십수년 넘게 반려동물과 가족처럼 공존해온 사람들의 눈에는 보신탕 먹는 사람은 남의 동생이나 자식을 잡아먹는, 인육을 먹는 사람과 흡사하게 보일 것이다. 지금 옆집에서 자식처럼 키우는 반려동물에 대해, 오랫동안 먹어왔다는 전통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는다.

‘애완견을 먹는 게 아니다’라고 발끈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개 식용농장에는 품종 구분이 없다. 식용견과 애완견을 구분해서 먹는다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도사견이나 황구라고 불리는 덩치 큰 개들도 가족으로 키우면 식용이 아닌 거다. 우리 병원에 살던 잉글리시세터 ‘나나’도 식용농장에서 구조된 아이였고, 종종 시추나 코커스패니얼, 푸들조차도 도살 직전에 구조되어 치료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다. 리트리버, 코커스패니얼, 맬러뮤트가 도살 현장에서 구조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똥개 한 마리 60만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보신탕집에 앉아 땀을 수육처럼 흘려가며 ‘굳이’ 누군가의 가족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차라리 시원한 팥빙수로 무더위를 날려버리는게 더 쿨하지 않을까.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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