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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냥 찍었으니 테마도 ‘그냥’”…사진으로 크는 아이들

등록 2015-08-17 19:00

지난 6월14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무등산 일대로 야외 촬영 수업을 진행한 광주청소년수련원 ‘포토 앤 드림’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지난 6월14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무등산 일대로 야외 촬영 수업을 진행한 광주청소년수련원 ‘포토 앤 드림’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광주청소년수련원 방과후 ‘포토 앤 드림’
“짜장면이 좋아요? 짬뽕이 좋아요?” 말문을 닫고 있던 학생들이 이 질문에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짬뽕이 좋다는 학생도 있고 짜장면이 좋다는 학생도 있다. “이런 게 바로 취향이란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선호하는 사진이 있을 것인데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짬뽕을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볼 일이 없어요. 짬뽕, 혹은 짜장면이 좋은 이유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각자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분의 것이며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 선택을 하는 것이 사진에서 테마를 잡는 방법입니다.”

천주교살레시오수녀회 운영
중학 2학년생 대상 사진수업
SNS로 카메라 기증받아 시작
교실 수업 줄이고 실습 위주로
찍고, 컷 고르고, 테마 정하고…
내년1월 사진집·전시 준비 마무리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의 눈이 빛났다. 물론 딴짓하는 녀석들은 늘 있다. 이곳은 광주광역시 청소년수련원(이하 광청수)이며 학생들은 중학교 2학년 15명이다. 나는 지난 4월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이곳 광청수에서 사진 수업을 하고 있다. 청소년수련원은 1999년 광주시가 설립했고 (재)한국천주교살레시오수녀회에 운영을 위탁한 시설이다. 광청수의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마인’(마인은 살레시오수도회 공동창립자 중 한 명인 성녀 마리아 마자렐로의 애칭)의 여러 과정 중 ‘포토 앤 드림’을 맡아서 2016년 2월까지 진행한다. 지난겨울 살레시오수녀회 소속 박현주 세실리아 수녀님이 전자우편을 보내와 사진 교육의 취지를 설명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고 하고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사진을 가르칠 강사가 필요하니 광주 사는 사람 중에 무보수로 1년 동안 사진 교육을 할 만한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의 한 사진가협회에 가보겠다고 해서 급히 말렸다. “차라리 내가 하겠다.” 그다음엔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수녀님의 사연을 올렸고 전국 각지에서 10여대의 카메라를 보내왔다. 니콘이미징코리아에서 장기 대여해주기로 한 카메라가 있으니 합하면 교육을 시작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수업을 도와줄 보조교사가 필요했는데 알고 지내던 광주의 김남기씨와 전남대 신방과 학생 이란아씨가 자원했다.

4월8일 첫 만남과 함께 사진 강의를 시작했다. 1년 가까이 교육을 할 수 있고 뭐든지 수용할 수 있는 나이라서 여유있게 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중2’를 왜 무섭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처음엔.

셔터와 조리개, 촬영모드, 감도, 심도, 색온도, 노출보정 등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한번 쭉 훑고 넘어갔다. 첫날부터 바로 바깥으로 나가서 촬영 실습을 했다. 어찌 보면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진이란 매체와 접하는 날에 교실에서 지지부진 김빠지는 기억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다 보니 중2가 왜 무서운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집중을 하지 않거나 자기들끼리 떠들거나 책상에 엎드리거나…. 그래서 가능한 한 교실 시간을 줄이고 밖으로 나갔다. 한창 뛰어놀 나이이니 점프샷도 했지만 역광에선 어떻게 대처하는지 정도는 습득했다.

6월 말이 되었고 이제 나머지 7개월을 끌고 갈 각자의 테마를 정할 시기가 왔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엔 ‘이름붙이기’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6월14일 광주 무등산 증심사 야외수업 때 각자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이 중 3장씩 학생들 스스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했다. 나는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한 명당 3장의 사진을 화면에 띄우고 이름을 붙여보라고 했다. 이름이 도대체 뭔지 모를 수 있으니 사진을 보면서 떠오르는 아무 낱말, 기분, 느낌을 말하라고 했다. 3장 중에 1장씩 이름을 붙여도 좋고 3장의 공통점을 찾아도 좋고 3장을 대표하는 문패를 달아도 좋다고 했다. 상대는 중2다. 교실 수업에서 조금만 느슨해지면 아이들은 ‘먼 산, 잡담, 엎어지기’에 돌입한다. 스스로 고른 자기 사진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 2초 정도 침묵이 오면 끝장이다. 얼른 당사자가 아닌 다른 학생의 의견을 묻는다. “가은이 사진에 대해 채연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침묵이 1초가 넘을라치면 잽싸게 “그렇다면 주영이 의견은?” 이 정도면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주영이 의견이 나왔다면 다시 사진을 찍은 가은이에게 묻는다. “마음에 드는가?” 아무 말이 없다. 싫다는 뜻이다.

“그럼 테마를 뭐로 할까?”

“그냥이요.”

“그냥?”

“찍을 때 그냥 찍었으니 그냥으로.”

“대충 찍었다는 그냥인가, 아니면….”

말없이 씩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웃는다. 느낌으로 찍었다는 ‘그냥’이란 뜻이다.

그래서 가은이의 테마는 ‘그냥’이 되었다.

8월 현재 방학이라서 사진 교육도 쉬고 있다. 9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각자의 테마에 잎이 나고 꽃도 피고 열매도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 정해진 각 학생들의 테마는 다음과 같다. 민우-반짝반짝, 동식-길(친구와 함께하는 길), 원-커질 수 있다(성장 가능성), 가은-그냥, 민수-마치 꽃처럼, 도은-조화(공존), 채연-미끈 매끈, 민혁-명암(여러가지 의미에서), 세빈-숨은그림찾기, 주영-호기심, 형지-깔끔한 스타일, 정훈-시원함, 민기-연꽃, 찬권-꿈.

향후 사진 수업 ‘포토 앤 드림’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9월에 프로축구단 광주FC의 도움으로 학생들이 프로축구 공식 경기를 운동장에서 촬영하기로 되어 있다. 11월에 광주 지역 사진가 김주영씨의 도움으로 ‘담양 예수마음의 집’에서 학생들이 그동안 배운 사진 실력을 동원해 장수 사진을 찍기로 했다. 내년 1월에는 사진집과 사진 전시 준비가 마무리된다. 사진전에 필요한 사진 인화는 서울 충무로의 한 업체가 무상으로 전담하기로 했다.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기간 사진 교육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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