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사면심사위 회의록’ 입수
김일수 교수 등 “공감 어렵다”
노건평씨 사면에도 반대
황희철 법무차관 등 의결 강행
‘심사 과정 요식행위 불과’ 평가
김일수 교수 등 “공감 어렵다”
노건평씨 사면에도 반대
황희철 법무차관 등 의결 강행
‘심사 과정 요식행위 불과’ 평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8·15 특별사면에 대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회의에서 서청원(사진) 새누리당 의원과 노건평씨 등의 사면에 일부 위원들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정부 쪽 위원들 중심으로 ‘원안’ 통과를 밀어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법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21일 입수한 ‘2010년 8·15 사면심사위 회의록’을 보면, 이귀남 위원장(당시 법무부 장관)을 대신해 황희철 차관이 회의를 주재했다. 또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과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정부 쪽 위원으로 참석했다. 외부 위원으로 권영건 전 안동대 총장, 김일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철 대구가톨릭대 총장이 참여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공천헌금’을 받아 처벌된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의 특별감형,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으로 알선수재죄가 확정된 노건평씨의 형집행면제였다. 김일수 교수는 “일반 국민이 보기에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 지탄받을 수 있는, 공감받기 어려운 사면”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무부 쪽이 서 의원 등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주장하자, 오영근 교수는 “이분(특별감형 대상자)들은 수사, 재판, 형집행정지 단계에서 다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디스크 수술한다고 잡범들은 나갈 수 있냐”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이어 “솔직히 정치인, 공직자 등 사면 대상자들 면면을 보면 모두 부패 관련이고 선거사범들도 그런 분들인데, 이렇게 명단을 보고 있으려니까 옛날 신문에 났던 기억이 떠오르고, 솔직히 심사를 하면서도 상당히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하지만 최교일 검찰국장은 “우리나라 선거 문화는 대체로 공명선거가 잘 정착되어 있는 편”, “선거사범 규제나 처벌이 상대적으로 가혹하다는 측면도 있다”며 정치인 사면을 옹호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인 사면과 관련한 지적도 나왔다. 당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이 사면 대상자였다. 김 교수는 “대상자들을 보면 아무래도 대기업 위주”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철학이 고려됐냐”고 물었다. 오 교수는 “(명단에 오른 경제인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횡령이나 배임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황 차관은 “국가 경제 발전이라든가 우리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점 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봤다”고 답했다.
두 교수는 사면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황 차관은 “진지하게 경청”한다면서도 원안대로 의결을 밀어붙였다. 권영건 전 총장과 홍철 총장은 대부분 이에 동조했다. 권 전 총장은 “저 높은 곳에 있는 분은 숲을 보는데 내가 나무를 보는 식견을 가지고 거부할 때 과연 그게 바람직한 것인지 하는 혼란도 솔직히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총장은 “특별한 의견 없다”며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오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의결권이 없고, 위원들이 자기가 주장을 해도 관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니까 원안대로 통과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2008년 도입된 사면심사위는 대통령에게 상신하는 사면안의 적정성을 심사·자문하는 기구로, 이번 사면 때도 열렸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이번 광복 70년 특사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사면 대상) 명단이 내려오지 않은 사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지만, 5년 전 회의록을 보면 사면심사위의 논의가 요식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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