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200명,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 ‘반대’ 선언
“박 대통령 명예훼손 소송 염두…시민 인권 침해 가능성 커”
“박 대통령 명예훼손 소송 염두…시민 인권 침해 가능성 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심의를 당사자가 아닌 3자도 신청할 수 있도록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법률 전문가 205명이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를 선언했다.
24일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 등 법률가 205명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심위의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며, 개정 추진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선언문을 내어 “이번 심의규정 개정 시도는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위협임을 선언하며, 이러한 개정 시도를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지난달 13일 전체회의에서 현재 ‘친고죄’(당사자만이 심의 신청) 취지로 돼있는 명예훼손 관련 통신심의규정을 ‘반의사불벌죄’ 취지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통신심의규정의 모법에 해당하는 형법, 정보통신망법 등이 명예훼손을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고소·고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통신심의규정 역시 그렇게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심의규정 개정이 부적절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양규응 변호사(참여연대)는 “행정조치의 근거인 방심위의 규정과 형법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이를 ‘맞추겠다’는 취지 역시 타당성이 부족하다. 또 형법에서 명예훼손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했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피해자 고소 없이 모든 명예훼손 사건을 직권으로 수사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는 “사실상 행정기관인 방심위의 심의 권한이 넓어지면, 시민들의 명예를 보호하기보다는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이번에 심의규정을 개정하려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박효종 방심위원장이 심의규정 개정에 대해 “공인의 경우 법원 판결이 있는 경우에만 당사자 신청 없이도 심의, 삭제 차단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명예훼손 소송들의 판결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재판부가 명예훼손 유·무죄 결과와 관계없이 판결에서 ‘어떠어떠한 내용은 허위의 사실로 본다’고 밝히면, 이를 근거로 방심위가 광범위한 통신심의를 벌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방송에 견줘 통신에서는 ‘정치 심의’ 논란이 많이 제기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광범위한 통신심의로 정치인 등이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심위는 빠르면 이번주 열릴 전체회의에서 통신심의규정 개정을 위한 입안예고를 할 전망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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