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난민인권단체 ‘피난처’에서 열린 난민들을 위한 바자회에서 난민 신청자, 대원외고 학생들, 인권단체 직원 등이 어울려 환하게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고소한 기름 냄새가 좁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한가위 연휴를 앞둔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난민인권단체 ‘피난처’ 사무실에는 송편과 전, 과일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주방 앞 탁자에선 동태와 호박 등을 꿴 꼬치전이 달걀옷을 입은 채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서울 대원외고 1~2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난민봉사 동아리 ‘쉘터’ 회원 15명은 직접 과일을 씻고 요리를 하느라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학생들이 한가위를 앞두고 피난처를 찾은 것은 올해로 4년째다. 해마다 한가위 무렵이면 이곳에서 난민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과 봉사활동을 한다. 난생처음 만드는 동태전과 한바탕 씨름을 하고 있는 남학생들 곁에선 부룬디·예멘·에티오피아·케냐·이집트·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난민 10여명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 출신 50대 남성은 연신 “하오츠”(맛있다)를 외치며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데 한국에서는 전을 먹는 게 새롭다”고 했다.
학생들은 ‘할랄’(이슬람 율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만든 음식) 인증을 받지 않은 고기는 입에 대지 않는 무슬림 난민들을 위해 고기 요리를 빼고, 한국 음식을 낯설어하는 난민들을 위해서는 사과·옥수수·마요네즈를 섞은 샐러드를 내놨다. 이채원(16)양은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보러 가고 싶을 때 가지만 난민들은 그러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피난처 앞뜰에서 열린 난민돕기 바자회에는 옷·액세서리·신발·가방 등 기부로 마련한 상품이 깔렸다. 학생들은 직접 만든 바자회 포스터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바자회에서 3000원짜리 옷과 액세서리 등을 산 박현분(53)씨는 “고국의 음식이 그리울 난민들이 우리 한가위 음식을 맛보면서 외로움을 덜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어울리면서도, 난민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기름 냄새 가득한 사무실 한켠에서는 난민들의 법률상담이 이어졌다. 법무부 심사에서 거절당한 뒤 이의신청을 내고 3년째 난민 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에티오피아 난민 2명이 피난처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치적 이유로 에티오피아를 떠난 28살 남성은 “아버지는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남동생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무슬림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집트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온 60대 콥트교(기독교 일파)도 남성은 타이(태국)에 있는 부인과 어린 딸을 3년 넘게 보지 못했다고 했다.
최치권 피난처 간사는 “우리는 한가위에 만나 정을 나눌 가족이 있지만, 난민들은 가족과 떨어져 있어 연휴 기분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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