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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형님, 같이 왔으니 같이 내려가야죠”

등록 2015-11-22 19:46수정 2015-11-22 23:47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농민단체들이 서울 종로2가 부근에서 ‘농민정책을 말살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다 죽었다’는 의미를 담은 상여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A href="mailto:withbee@hani.co.kr">withbee@hani.co.kr</A>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농민단체들이 서울 종로2가 부근에서 ‘농민정책을 말살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다 죽었다’는 의미를 담은 상여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30년 지기 아우, 백남기씨 병상지켜
“정부가 사과는 커녕 병문안도 안와”
농민들 농촌 현실 알리려 집회참가
물대포 세례에 폭도 비난듣고 분노
“같이 올라왔으니 같이 내려가야지. 형님, 어서 일어나소.”

권용식(51) 전남 보성군 농민회장은 22일 백남기(68)씨가 누워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백씨와 30년 동안 함께 농민회 활동을 해온 그는 지난 14일 이후 백씨의 가족들과 함께 눈물로 병실 앞을 지키고 있다. 그간 정부는 사과는커녕 쓰러진 백씨를 한번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런 건 아예 기대도 안 해요. 있는 그대로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좋겠네요.” 권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남기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진 지 22일로 아흐레째로 접어든다. 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로 몰려왔던 농민들은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며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안타까움과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시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한 농민은 2만5000여명(주최 쪽 추산)이다. 쓰러진 백씨를 포함해 이날 참여했던 농민들은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이었다. 오윤석(49) 충남 논산시 농민회 사무국장은 “논산에서 참여한 450여명의 농민 대부분이 60~70대였다”고 전했다. 농촌의 고령화로 다른 지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 지긋한 농민들이 체력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비를 털어 새벽차로 상경한 이유는 지금 농촌이 “하늘과 땅만 믿고 생업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17만원 수준이던 쌀값(80㎏)을 21만원까지 회복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지금 쌀값은 13만~15만원대다. 올해 수확한 쌀 20만톤의 시장격리 조치 등 정부의 수급안정대책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전북 익산에서 친환경 쌀농사를 짓는 김복수(74)씨는 “일년 내내 고생해도 손에 남는 게 없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할 때 쌀값을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계속 모르쇠하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명이라도 더 나가서 (농촌의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심정이었다”는 게 김씨가 지팡이까지 짚고 행진에 참여한 이유였다. 농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농업과 농민을 말살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 당시 집회에서 상복을 입고 상여를 멘 채 행진에 나섰다.

그들에게 돌아온 건 ‘물대포’ 세례뿐이었다. 당시 농민 행진 선두에서 상여를 멨던 충남 농민 최영규(52)씨는 “이것(상여) 좀 봐라. 이렇게 농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본대회장에) 도착도 하기 전에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며 분노했다. 신광진(57) 경북 의성군 농민회 회장도 “노인들도 많이 가고 최대한 안전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게 강하게 진압을 했어야 했나 화가 난다”고 말했다.

물대포 세례보다 더 아픈 건 ‘폭도’라는 비난이다. 제주도에서 하우스 딸기 농사를 짓는 김정임(55)씨는 “시골에서는 농산물 값이 떨어져서 밭을 갈아엎고 있는 실정인데, 언론에서는 서울까지 올라간 농민들을 폭도라고 매도하고 있다”며 “왜 농민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것엔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금도 집회 당시의 상황이 눈에 어른거려 멍해진다”고 말했다.

박수지 황금비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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