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압 없었던 ‘평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범국민대회’(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 5만명(경찰 추산 1만4000명)이 노동개악 철회와 밥쌀 수입 반대, 국정교과서 반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5일 평화집회” 약속 지켜져…
행진 허용된 2차선 비좁아
1시간30분 광장 못빠져나와도
시민집회자·경찰 모두 자제
행진 허용된 2차선 비좁아
1시간30분 광장 못빠져나와도
시민집회자·경찰 모두 자제
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범국민대회’(범국민대회)에는 5만명(경찰 추산 1만4000명)의 시민이 모였지만 일부에서 우려했던 폭력과 충돌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열린 1차 민중총궐기와 집회 주최나 내용 등이 비슷해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될 것이 명백하다’던 경찰의 집회 금지통고 이유를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 차벽도 없었고 폭력도 없었다 이날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현장을 지켜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대규모 군중이 모인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경찰이 평상시와 달리 차벽을 설치하지 않고, 무장한 경찰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경찰은 이날도 광화문 인근에 225개 중대 2만여명과 살수차 18대 등을 준비시켰지만, 실제로 이를 배치하진 않았다. 지난 집회 때 농민 백남기(68)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3주째 중태에 빠져 있는데다, 법원마저 경찰의 집회 금지통고가 근거 없다며 주최 쪽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왔다는 비판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이 차벽으로 길을 막지 않는 등 기존에 비해 유연하게 대응하자, 주최 쪽 역시 경찰과의 충돌로 이어질 만한 행동을 자제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이날 행진에 허용된 차선(2차선)이 비좁아 행진 시작 1시간30분이 넘도록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빠져나오지 못하자 일부 참가자가 폴리스라인을 넘어 전 차선을 점거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경찰이 경고하자 15분 만에 신고된 행진경로로 돌아간 것이 대표적인 예다.
■ ‘중재의 손길’ ‘감시의 눈’ 주효 “우리가 평화의 도구가 되겠다”며 5일 범국민대회가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종교계가 잇단 호소와 중재 노력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불교, 개신교, 성공회, 원불교, 천도교 등 5개 종단 성직자와 신도로 구성된 종교인평화연대는 민중총궐기에 앞서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열고 평화 집회를 염원했다. 평화 집회 개최를 중재해온 대한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폭력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며 제안한 이 기도회에서 종교인들은 위헌적 차벽 설치 중단과 헌법이 보장하는 안전한 집회 및 행진의 자유 보장, 경찰의 폭력진압 중단, 백남기씨에 대한 폭력진압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애초 경찰이 설치한 차벽이나 경비 병력 앞에 꽃을 놓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차벽이 등장하지 않자 서울광장 주변에서 ‘걷기 명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날 집회에는 대규모 집회감시단이 투입됐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의 ‘인권침해감시단’ 35명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현장모니터링단 25명이 집회를 감시했다. 말레이시아 출신 인권변호사인 뉴신예 등 3명으로 구성된 국제인권감시단도 입국해 경찰의 인권침해 상황을 감시했고, 의경에 대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기 위한 군인권센터 감시단 20여명도 현장에 나왔다. 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도 30여명 규모로 ‘취재방해감시단’을 구성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와 소속 국회의원 39명과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와 소속 정진후·김제남 의원 등 정치인들도 ‘평화지킴이’를 자처하며 현장에 나왔다. 이런 감시의 눈 때문인지 경찰은 평소보다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취재방해감시단 단장을 맡았던 손관수 방송기자연합회 회장은 “대세를 바꿨다고 보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기자들이 집회를 감시하겠다고 나선 상황 자체가 역설적이지만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한다면 다시 감시단을 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허승 박수지 방준호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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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 ‘평화의 꽃길’ 기도회 종교인평화연대 성직자들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꽃을 들고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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