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가 11일 전남 보성역 광장에서 출정식을 열고 17일 동안의 보성~서울 도보순례에 들어갔다. 사진 안관옥 기자
“기억하자. 분노하자. 심판하자.”
11일 오전 전남 보성군 보성역 광장. ‘백남기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가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보성~서울 도보순례의 출정식을 열었다. 전국에서 찾아온 농민·노동자 등 150여명은 “백씨를 할퀸 폭력을 이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다”고 외쳤다.
보성역은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가 지난해 11월14일 서울 광화문으로 출발했던 장소이고, 이웃 농민들이 그의 귀환을 기다리며 90일째 농성을 벌여온 공간이다.
도보순례단은 17일 동안 광주~전주~대전~수원을 거쳐 서울까지 북상한다. 이들은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녹색 몸자보와 목도리를 두르고 400여㎞를 걸을 예정이다. 오는 21일 대전시청에선 국가폭력사건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27일 서울광장에선 제4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날 출정식에는 보성지역 농민을 비롯해 배종렬·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 의장,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문규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 등이 어두운 표정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출정문을 통해 “백남기 농민이 보성에서 씨앗을 뿌리며 간절하게 꿈꾸었던 ‘쌀값 보장’과 ‘민주 회복’의 희망을 품고 서울로 간다. 걸음마다 백남기님이 어서 일어나 고향으로 달려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담겠다”고 다짐했다.
김영호 전농의장은 “지난해 11월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씨가 서울대병원에서 90여일 동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사과조차 없는 정권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순례단에 참여한 천주교 광주대교구 이영선 신부는 “‘누가 백씨를 이렇게 만들어 놨을까’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난다. (고난을 이기기 위해) 이제는 울지만 말고 우리끼리 더 친해지고 더 따뜻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도 연대를 표시했다. 김종기 세월호가족대책협의회 사무처장은 “또다시 도보순례에 나서야 하는 이 현실이 참담하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영준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전국에서 120여개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있다. 정부·국회·언론이 눈을 감고 있는 사건의 진상을 알려, 국민과 함께 해법을 찾으려 한다”고 밝혔다.
출정식을 지켜본 백씨의 부인 박경숙(63)씨는 “남편은 인공호흡기가 없다면 20~30분 안에 절명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며 “이 염원을 병상의 남편이 들었으면…. 그래서 악몽을 털고 일어나 고향집 뒷마당의 푸른 밀밭으로 돌아왔으면…”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보성/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