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인출해 보관토록 피해자 유인
중학생 보내 돈 수거하다 ‘덜미’
중학생 보내 돈 수거하다 ‘덜미’
대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아무개(16)군은 ‘일당 80만~15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중국동포 친구 주아무개(17)군의 말에 넘어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가담했다. 이군이 할 일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피해자가 돈을 인출해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 그 집으로 가 몰래 돈을 갖고 오는 일이었다. ‘수거책’ 역할을 한 것이다.
지난달 25일, 이군은 서울 서초구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정아무개(68)씨의 돈을 갖고 오라는 첫 ‘임무’를 부여받았다. 정씨는 이미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에 속아 예금·적금 등을 인출해 마련한 현금 1억400만원을 아파트 거실 에어컨 등에 보관해뒀다가 이미 피해를 본 터였다. 정씨가 피해 사실을 모를 거라고 여긴 조직은, 정씨에게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하라고 요구한 뒤, 이 돈마저 가로채기 위해 이군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군이 돈을 가지러 갔을 땐 피해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정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서울 방배경찰서 형사들은 이군과 밖에서 이군에게 지시를 하던 수거관리책 차아무개(21)씨를 현장에서 붙잡고, 이군을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끌어들인 주군과 대구·대전 지역 수거책으로 가담한 또 다른 중학생 박아무개(16)군도 붙잡았다. 경찰은 이군 등 중학생 3명은 절도미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수거관리책 차씨는 구속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어려워지자 피해자가 돈을 인출해 보관하도록 유인한 뒤 이를 수거해가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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