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3곳 수도·화장실 지원
내년까지 주민 4만명 혜택 예상
“집에서 곧장 물 쓸 수 있어 기뻐”
시간활용 등 ‘삶의 질’ 향상 기대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에 위치한 마을 운드윈에서 지난 15일(현지시각) 아이들이 집에 설치된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튀기며 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준표! 지후!”
미얀마 중부지방 만달레이의 미타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각) 대한적십자사 직원 등을 만난 트웨 트웨 몬(20·여)과 에이 에이 몬(19·여)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배우의 본명은 모른다”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온 연기자들의 극 중 이름을 외쳤다. 이들은 삼성전자나 화웨이, 비보 등 중국산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한국에서 온 손님들의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지난해 10만차트(10만원)대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마을 주민들은 한 집에 한 대꼴로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서너 가구 가운데 한 집꼴로 텔레비전이 있어 저녁시간대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 <주몽>이나 <꽃보다 남자>를 본다고 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시골 풍경과 비슷한 모습이다.
한국 드라마와 스마트폰이 집집마다 보급됐지만, 정작 이 마을엔 제대로 된 ‘수도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소달구지에 물통을 싣고 우물로 가 물을 길어다 써야 했다. 그날 필요한 물을 받아 오는 데만 꼬박 하루 2시간씩 소요된다. 그마저도 ‘깨끗한’ 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십자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건조지대인 만달레이와 마궤 등 3개 지역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마을 수도 공급시설 설치와 가정용 화장실 자재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삼성의 자금 지원을 받아 2017년까지 3년 동안 진행하는 ‘물과 위생 사업’이 끝나면, 4만명 넘는 주민이 ‘깨끗한 물’을 쓸 수 있게 될 거라고 적십자는 내다보고 있다.
‘세계 물의 날’(22일)을 앞두고 지난 14~18일 <한겨레>가 방문한 지역 중 한 곳인 미타의 힌냔칸 마을에도 한 달 전 수도시설이 갖춰졌다. 이 마을 지도자 티다 차잉(38)은 “물이 많이 필요해 하루에 두 번 물이라도 긷는 날이면 물 뜨는 데만 4시간을 썼다. 그런데 이젠 집에서 곧장 물을 쓸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는 “물 뜨러 갈 시간에 요리를 하거나 숲에 가서 나무를 구해 올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 미타의 마을 지도자 티다 차잉이 지난 16일(현지시각) 소가 끄는 탈것에 탄 채 물을 길으러 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깨끗한 물은 주민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건강과 수입, 교육, 안전, 존엄 등 삶의 전반적인 부분과 밀접히 연결돼 있었다. 8명의 대가족과 함께 사는 마을 주민 뇨눼드(31·여)는 “물 구하는 데 아낀 시간에 남편은 농사를 짓고, 숯을 팔기도 한다. 덕분에 한 달에 5만차트가량의 수입이 더 생겼다”며 웃었다. 그는 “(이 가외수입을) 애들 교육이나 부모님 봉양에 쓰겠다”고 말했다. 베틀로 직물 짜는 일을 배우고 있는 산다르 모(18·여)는 “집에 수도시설과 화장실이 설치되기 전에는 숲에서 볼일을 보고 연못 근처에서 다 같이 씻어야 했다. 지금은 집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어 안전하고 좋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트웨 트웨 몬과 에이 에이 몬은 마을에서 ‘물과 위생 사업’의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한다. 집집마다 화장실을 설치하는 과정을 확인하고 상황이 어떤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다른 봉사자들은 아이들한테 손씻기를 생활화하는 교육 등을 맡고 있다. 아이들은 노래와 율동으로 손 씻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마을회관에 모인 아이들은 언제 손을 씻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밥 먹기 전에, 화장실 다녀온 뒤 손을 씻는다”고 소리쳤다.
마을마다 주민들로 구성된 자치 봉사 조직이 있다. 적십자 쪽은 “프로젝트가 1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설이 유지·보수되려면 주민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설치 이전에 마을에 봉사단을 조직해 이들을 먼저 교육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프로젝트 현장 방문을 마친 뒤 만난 타 흘라 슈웨 미얀마 적십자사 총재는 “마을 커뮤니티가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앞으로 몇 달간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도 과거 미얀마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경제와 교육 수준이 발전하며 지금과 같이 되지 않았나. 미얀마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달레이(미얀마)/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