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회의의 횡포
서울 종로 ㅁ아파트 인원 1/4 감축
동의서 안내면 무조건 ‘찬성’ 간주
반대땐 이유·대책까지 적어내게해
반대 2배이상 많았지만 해고될 판
주민이 구청에 민원제기해 재투표
서울 종로 ㅁ아파트 인원 1/4 감축
동의서 안내면 무조건 ‘찬성’ 간주
반대땐 이유·대책까지 적어내게해
반대 2배이상 많았지만 해고될 판
주민이 구청에 민원제기해 재투표
지난 2월 중순, 서울 종로구 ㅁ아파트 각 가구의 우편함엔 ‘경비실 인원 감축 찬반 동의서’(안내문 포함)가 날아들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전체 경비원(24명) 중 4분의 1인 6명을 감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니, 일주일 안에 찬성-반대 의견을 담은 동의서를 제출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 감축안에 대해 ‘찬성’할 경우, 찬성란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동의서를 내지 않으면 된다면서도, ‘반대’를 하기 위해선 “대안까지 제시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기권’으로 간주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를 임의로 찬성 쪽으로 돌린 것이다.
이런 ‘기울어진 투표 설계’ 속에서도 전체 가구(960가구) 중 3분의 1에 이르는 325가구가 동의서를 제출했고, 이 중 228가구가 경비원 6명을 해고하는 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산 주민 박아무개(27)씨는 “경비원이 부족하면 치안이 우려되는 상황인데 단기간 비용 절감만을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의가) 일방적으로 해고에 유리한 쪽으로 결과가 나오게끔 동의서를 받았던 데 대한 역작용”이라고 말했다. 박씨와 의견이 비슷한 주민들이 구구절절 사유를 적어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적극적인 ‘반대’ 의사 표시를 한 결과란 얘기다.
문제는,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가구였다. 미제출한 가구만 635가구로 과반이 넘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공지한 대로라면 635가구의 의견이 모두 찬성으로 간주돼, 투표에 참여한 가구의 다수 의견을 뒤집게 되는 셈이었다. 이에 한 주민은 지난달 ‘투표 절차가 불합리하다’며 종로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은 지난달 18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동의서를 내지 않았거나, 안내문을 확인하지 못한 세대가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에 따르게 해 투표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결여됐다”며 재투표를 하라고 시정권고를 내렸다. 이금용 종로구청 주택관리팀장은 “한눈에 봐도 일방적으로 한쪽에 유리하게 정해진 투표 방식이었다. 투표 절차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 구청 고문변호사한테 자문을 구한 뒤 시정권고를 내렸다”고 말했다.
구청의 권고에 따라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쪽은 “찬반동의서를 미제출한 가구를 대상으로 7일까지 재투표를 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관리사무소 쪽은 “이번 투표는 (반대할 때도) 별도로 사유를 쓰지 않고, 단순 찬반 투표로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