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기초연금’이 이번 4·13 총선에서도 각 당의 주요 공약으로 다시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액이 인상되긴 했지만, 애초 대선 공약에서 후퇴한데다 우리 사회 노인빈곤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월 30만원으로 인상’이라는 큰 폭의 인상 공약을 발표하자, ‘현행 유지’를 고집하던 새누리당은 뒤늦게 ‘하위 50% 노인 생계보장 강화’ 방안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야권 공약은 재원 마련 현실성 논란이 일고 있고, 새누리당은 야권에 대항하기 위한 생색내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60대 이상 유권자는 984만명으로, 이번 총선의 최대 유권자 그룹이다.
더민주는 일찌감치 지난달 초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기초연금 월 30만원 지급’이라는 상당히 파격적인 방안을 내놨다. 현재는 70% 노인에게 국민연금과 연계해 최고 20만원 내에서 차등지급하고 있다. 더민주 방안은 일단 올해 70% 노인에게 똑같이 20만원씩을 지급하도록 제도를 개선한 뒤, 2018년까지 30만원으로 올리자는 내용이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70%에 20만원을 똑같이 지급’ 입장이었는데, 지난달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주도해 ‘30만원으로 인상’ 방안을 확정했다.
정의당은 ‘100% 노인에게 30만원 지급’을 최종 목표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하진 않아 선언적 성격이다. 대신 일단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자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정의당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되, 캐나다의 ‘클로백’(Clawback) 제도를 본떠, 소득 상위 3% 이내 초고소득층에 대해선 지급한 연금을 세금으로 다시 거둬들이자는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현행 제도의 틀을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전혀 못 받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38만여명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연계해 금액이 깎이는 국민연금 수급자 28만여명에 대해 20만원을 균등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로 알려진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연금 보장은 더민주와 정의당도 공약으로 채택했다. 현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는 경우 기초연금액이 수급자의 소득에 포함돼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그만큼 삭감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삭감조항을 없애려면 약 7583억원(2016년 기준)의 국비가 추가로 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애초 현행 기초연금 제도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쪽이었다. 오히려 야당의 인상안에 대해 ‘포퓰리즘적 복지공약’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갑자기 “일률적 기초연금 확대 대신 소득 하위 50% 노인에 대한 기초생계 보장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어떤 내용을 추진할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후대책이 없는 소득 하위 50% 계층한테 기초연금을 40만원이나 그 이상 줄 수 있다. 노후 소득이 안정된 사람한테까지 올려줄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지만, 이후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확정된 수준은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은 <한겨레>에 “재원이 있으면 어느 쪽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 것인지를 언급한 수준이지, 기초연금을 올릴지 혹은 기초생계급여를 올릴지 등의 구체 방안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공약 경쟁에 불이 붙은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위반이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소득 하위 70% 노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만~20만원으로 차등 지급하는 등 후퇴한 내용으로 2014년 7월 도입됐다. 애초 공약보다 대상 범위와 액수가 줄어들자 ‘기초연금 현실화’ 요구가 제도 시행 직후부터 끊이지 않았다.
복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차지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서 기초연금 인상 공약의 취지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문제는 소요되는 재원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마련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는 월소득 100만원(부부가구 160만원) 이하인 노인 448만명(2015년 10월 기준) 정도다. 올해 예산은 10조3천억원(국비+지방비)이다. 더민주 공약대로 기초연금을 2018년에 30만원으로 올리려면 추가로 6조4000억원이 들고, 정의당 공약은 연간 5조원(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 시), 국민의당은 연간 8500억원이 필요하다. 더민주는 법인세 인상과 재정지출 구조조정, 국민의당은 복지예산 3% 증액, 정의당은 사회복지세 신설을 통해 실행에 옮기겠다는 계획이다. 김종인 대표는 지난달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복지제도는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하고, 다른 측면을 고려하면 복지재정은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7.2%에 이르는데, 현재 기초연금액 최고치인 20만원은 1인 최저생계비(약 64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기초연금이 실제 소비지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으로 상향조정되면 정책 효과가 커질 것”이라며 “다만 제도 시행 때도 재정 확보가 여의치 않아 선별 지급으로 바뀐 바 있어, 당장 추진하기엔 난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초연금이 노인빈곤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대신 정치적 선전도구로 먼저 활용되고 이후 수습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방식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