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동 주민’ 이아무개씨. 사진 박수지 기자
“재투표 종료일이 왜 (공고문에) 안 쓰여 있는 겁니까?”
서울 종로구 ㅁ아파트에서 경비원 감축안에 대한 재투표가 실시되고 있던 지난 1일 ‘103동 주민’ 이아무개(59·사진)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이런 문제 제기를 했다. “주민들을 상대로 또 어떻게 장난칠지 모르잖아요.” 이씨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도한 경비원 감축안 투표가 불공정하다며 구청으로부터 시정권고 조처를 받아 이미 재투표까지 성사(<한겨레> 4월6일치 12면 참조)시킨 터였다. 관리사무소로부터 종료일을 쓰겠다는 답변을 듣지 못해 이씨는 또다시 구청을 통해 민원을 제기했다. 관리사무소는 결국 투표 마감일이 적힌 공고문을 다시 붙였다. 지난 7일, 재투표가 무사히 끝난 덕분에 이 아파트 경비원 6명은 해고를 면할 수 있었다.
대학교수인 이씨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동네 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은 아니었다. 사실 ‘찬반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경비원 감축에 찬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적힌 동의서를 집에서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이런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결과적으로 이씨 가족도 미제출 세대가 돼 경비원 해고에 찬성한 셈이었다. 지난달 4일, ‘암묵적 찬성’의 결과가 경비원 감축 결정으로 이뤄졌다는 걸 아파트 복도에 붙은 공고문을 통해 확인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이씨는 ‘공식적’ 대응에 나섰다. 종로구청에 투표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입주자대표에게도 절차적 문제점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다른 한편으론 경비원 대신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할 때 관리비 절감 효과를 면밀히 계산했는지도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치 입주자대표회의록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의심스러운 지점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2월, 다른 주민이 입주자대표회의에 투표 절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으나 별다른 이유 없이 묵살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씨는 지난 3~4일 외부감사를 받아보자며 주민들의 서명 받기에도 직접 나섰다. 관리사무소는 “누군가 근거 없는 자료로 서명을 받으니 주의하라,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로 아파트 방송을 했고, 걱정하는 아내는 “나서지 말라”며 말렸다. 하지만 한편으론 “왜 이제 서명을 받으러 오셨느냐”며 응원하는 주민들도 생겼다. 그 결과, 감사 요청에 동의하는 300여가구의 서명을 모아, 이씨는 지난 11일 구청에 아파트 회계 전반에 대한 감사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번 기회에 주택법 공부를 단단히 했어요. 주민들이 감사 요청을 하려면 구체적인 감사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구체적인 문제점 등을 알면 곧장 고발하면 되지 감사 요청을 하겠어요?” 그는 “(지금의 주택법도)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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