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시장 상인들이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옛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전국 수협 직원과 어민들이 연 ‘노량진수산시장 정상화 촉구 총궐기대회’ 행진을 바라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량완!(2만원)”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옛 노량진수산시장. 중국인 관광객이 고른 대게 가격을 알려주는 중년의 여성 상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지난달 16일 바로 옆 신축 시장 건물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이곳은 ‘무허가 시장’이 됐다. 옛 시장에 남아 장사를 하는 상인 400여명은 교대로 밤새 자리를 지키며, ‘생존권 쟁취’라고 쓰인 빨간 조끼를 입은 채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새 건물의 좁은 영업 공간 등을 이유로 이전을 거부하고 옛 시장에 남았다.
같은 시각, 옛 시장 경매장터엔 수협이 주최한 ‘노량진수산시장 정상화 촉구 총궐기대회’가 열려 수협 직원들과 어민 1900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경찰 500명이 이들을 둘러쌌다. 이들은 ‘불법영업 중단’이라고 쓰인 하늘색 조끼를 입고 “상인들이 떼돈 벌 때 어민들은 목숨 건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상인들이 새 시장으로 이전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지켜보던 상인 몇몇은 흥분한 채 “수협이 이제 어민들과 상인들을 이간질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수산물을 사러 온 관광객들이나 고객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이탈리아 관광객 로베르타(48)는 “인터넷에서 인사동, 경복궁과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을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아서 왔다”며 “원래 영업을 해서 안 되는 곳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횟감을 사러 온 직장인 박소희(26)씨는 “뉴스는 봤지만 상황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새 시장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상인들이 반대한다면 건물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수협이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71년 개장한 뒤 ‘전국 최대 수산시장’의 명성을 이어온 노량진수산시장이 새 시장으로 이전 과정에서 점점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수협은 소매 상인 682명 가운데 230명만 새 시장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준비하고 있고, 나머지 452명이 옛 장에서 영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갈등의 정점은 지난 4일 발생한 ‘칼부림’ 사건이었다. 노량진시장 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비대위) 부위원장 김아무개(50)씨는 수협 직원 등을 회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혐의(살인미수)로 7일 구속됐다.
상인들은 지난해 10월 국고와 어업인 출자금 등 5200억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로 완공한 새 시장에 입주하는 것을 반대하는 첫번째 이유로 ‘좁은 영업 공간’을 꼽고 있다. 새 시장 판매자리는 4.96㎡. 이전(6.61㎡)보다 좁아졌으면서도 임대료는 이전보다 1.5~2.5배 비싸졌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수협 쪽은 “일부 상인들이 그동안 고객들이 쓰는 통로까지 썼다”며 “면적만 따져봤을 때 이전보다 좁지 않다”고 반박했다. 상인들은 또 시장 내부 구조가 마트 스타일처럼 바뀐데다, 건물 부지 위치가 애초 계획보다 지하철역에서 멀어졌음에도 수협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현대화 사업을 진행했다고 비판한다. 수협은 상인 대표가 2009년 양해각서에 서명하는 등 동의했음에도 일부 목 좋은 곳 상인들 중심으로 완공되고 나서야 반대한다며 조만간 명도소송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수협은 안전등급 진단에서 C등급(보강 필요)을 받은 옛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카지노 등이 들어간 복합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처음부터 이해관계가 다른 양쪽의 요구를 담아낼 ‘논의 기구’가 필요했다는 지적과 함께 서울시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서로 이해가 다른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논의 기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해결되지 않아 근본적인 문제 해결 대신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법적으로 시설 관리 등에 의무가 있는 서울시가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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