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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2 연말정산 파동’ 날라…건보료 수술 손놓은 박근혜 정부

등록 2016-07-20 20:40수정 2016-07-20 21:46

보수·진보진영 모두 개편에 공감
더민주 적극적…다른 야당도 동의
지지율 떨어졌던 연말정산 파동 뒤
청와대 외면, 정부·여당 복지부동
전문가 “고소득층의 반발 우려탓”
지난해 2월6일 국회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위한 당정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맨 오른쪽)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 원유철 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해 2월6일 국회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위한 당정 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맨 오른쪽)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 원유철 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해 1월 대한민국은 온통 ‘연말정산’ 논란으로 들끓었다.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을 통해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득 상위 10% 직장인의 세금을 인상했다. 이 세법이 적용된 연말정산 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되자, 세금을 토해내게 된 고소득 직장인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세금폭탄’이라는 비난 속에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1월21일 늘어난 세금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초유의 조처를 발표했다. 결국 면세자만 대폭 늘고 세법개정안은 누더기가 됐다.

1월28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방안’ 관련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두고 ‘건보료 개편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내용을 만든 기획단이 1년 반 동안 마련한 개편안이었고, 1월9일 출입기자들에게 배경 브리핑까지 마친 뒤였다. 문 전 장관은 2월9일 국회에서 “(부과체계를 바꾸면) 고소득 근로자의 부담이 최대 백만원까지 늘어난다. 증세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최근 건보료 개편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7일 자체 개편안을 내는 등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적극적이고, 다른 야당들도 모두 개편 취지에 동의하고 있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고소득층 세금(보험료)을 올리면 정부 지지율만 떨어지고 개혁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박근혜 정부의 ‘연말정산 트라우마’ 탓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불공정한 현행 체계…개편 여론 높아 현행 건보료 체계가 문제투성이라는 지적은 진보-보수 진영을 가로질러 대다수 전문가와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 기획단에 참여했던 사공진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 복지정책 20년 역사에서 진보-보수 언론이 이렇게 똑같은 입장을 취한 이슈가 없었을 것”이라며 “보편적 사회정의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과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불공정성이다. 실제 버는 돈(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 탓이다. 한 예로, 3억원짜리 주택과 자동차 1대를 보유한 4인 가구의 가장 ㄱ씨가 직장가입자로 있을 때, 보험료는 월 6만1200원(월급 200만원 기준)이다. 하지만 ㄱ씨가 실직한 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보험료는 20만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소득이 없어도 성별과 연령, 자동차·주택 소유 여부 등에 따라 보험료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만일 ㄱ씨에게 직장가입자인 아들이 있어 피부양자가 될 경우, 보험료는 곧바로 0원이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0년에 직장·지역조합 370여곳이 단일 조직으로 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보험료 부과방식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가 각기 다르게 유지됐다. 자영업자 소득 파악이 충분치 않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원화된 보험료 부과체계가 이어지는 동안 지역가입자의 민원은 끊이지 않아왔다. 지난해에만 보험료 관련 민원이 6726만건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17년째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건보료 개편을 2012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 2013년 7월부터 정부 산하에 관련 기획단을 꾸려 개편안을 준비했다. 지난해 1월 백지화 방침을 밝힌 뒤에도,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자 새누리당은 당정 협의체를 가동해 재논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새누리당 의원들과 정부, 전문가가 다시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이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총선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충분한 사전검토와 정밀한 시뮬레이션 중”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내는 “정치권에 떠밀려 논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먼저 안을 던지지는 않을 것”(복지부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고소득층 반발 우려 ‘올스톱’ 복지부의 이런 ‘복지부동’ 뒤에는 사실상 청와대의 암묵적 지시가 있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간호대)는 “청와대가 일부라도 반발하는 계층이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정부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며 “지난해 당정 협의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직장가입자 중 고소득 상위 2~5%, 지역가입자 중 고액 재산이 있는 1% 정도만 보험료가 오를 뿐인데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도 “(청와대와 정부가) 연말정산 파동보다 훨씬 더 민감한 사안이라고 보는 것 같다”며 “연말정산은 1년에 한 번이지만 건보료는 매달 내고 나중에 돌려받는 돈도 아니어서 고소득층의 반발이 훨씬 더 강할 것으로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김현숙 고용복지수석(전 새누리당 의원)은 당정 논의에서 가장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여당 의원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수석은 복지부가 발표를 백지화한 직후에도 국회 상임위 등에서 “정부가 모든 용역 결과(기획단 개편안)를 다 발표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를 폈다. 당정 협의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가 되니, (청와대와 여당에서)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리더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대선이 있어 올해가 현 정부에서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지만, 정부·여당 쪽에서 보면 더 ‘몸 사리기’를 해야 할 이유일 수 있다. 김종대 더민주 정책위 부의장(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최근 지상파 방송이 주최하는 관련 토론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새누리당과 정부 쪽에서 참석을 거부해 무산됐다”고 전했다.

방문규 복지부 차관은 “상당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낮춰주면서 (반발이 너무 거세) 새로 보험료를 더 물리지는 못할 경우, 전체 보험료 수입이 더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말정산 파동’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연말정산 파동은 정부가 누구 세금이 오르고 내리는지를 미리 분명하게 밝히지 않아 혼란을 부른 측면이 컸다”며 “건보료 개편도 대다수 가입자의 보험료는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내리게 되고 일부 고소득층의 보험료만 오르는 것인데, 목소리 큰 소수의 눈치를 보느라 대다수 국민에게 유리한 개편을 미루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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