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지킴이’ 손민희(왼쪽), 김영진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큰 양산 그늘과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우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빵과 우유,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지는 한 시민이 주고 간 것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들 태풍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폭염이 복병일 줄은 몰랐어요. 태풍 오면 비닐 덮어쓰고 견딜 수 있는데, 폭염은 피할 데가 없네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 앞. 소녀상 지킴이로 나선 채은샘(22)씨가 꽝꽝 얼린 생수병 한 보따리를 부리며 말했다. “이렇게 얼음물을 주기적으로 주는 분이 계세요. 근처 식당에서는 얼음이 녹지 않도록 냉동시설을 빌려주시고요.” 최나라니라(24)씨가 채씨가 가져온 생수통을 얼굴에 부볐다. 이날 서울 낮 기온은 36도를 웃돌았다. 청동으로 만든 소녀상도 여름볕 아래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해 12월30일 매서운 진눈깨비를 맞으며 시작한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반대! 대학생 행동’의 소녀상 지키기가 뜨거운 폭염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폐기되기는커녕, 일본 정부 안팎에서는 소녀상 철거·이전을 ‘위안부’ 합의와 연계시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상 지킴이들은 지난해부터 하루 2~3명씩 돌아가며 오전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동안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거리 청소를 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위안부’ 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피케팅을 하거나 매주 열리는 ‘수요시위’에서 보일 율동을 연습하다 보면 “24시간이 훌쩍간다”는 게 최씨 얘기다. 밤이 되면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함께 있던 채씨는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합의안 내용을 하나하나 실행해가고 있는데, 그럴수록 여기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소녀상 곁을 지키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겨울 침낭과 수천개 핫팩으로 온정을 전했던 시민들은 이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목욕권, 선풍기, 모기장 등을 전달하며 마음으로 소녀상 지킴이들의 농성에 동참하고 있다. 한 시민이 마음껏 음료를 먹으라며 근처 카페에 돈을 달아놓고 가면, 카페 쪽은 무료 음료를 더해서 얹어주는 식으로 온정의 크기는 커져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9일 낮에도 농성장을 찾은 한 시민이 빵과 아이스크림이 가득 든 봉지를 지킴이들에게 건넸다. 김영진(23)씨는 “지난번 농성 때 더위를 먹어서 배탈이 낫지만 그래도 주신 음식은 감사히 바로바로 먹어야 한다”며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물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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