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남혐사이트’만 적극수사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과 종로 일대에서 침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경찰이 여혐 사이트는 해외 서버라 수사를 못한다고 하더니 남성들이 피해를 입은 폭로 계정 운영자는 신속히 검거하는 등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연일 ‘패치’ 잡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11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재기패치’라는 계정을 운영하며 40여명의 사진을, ‘일베 회원에 성매수남’ 등의 설명과 함께 올린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로 이아무개(31)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0일 ‘강남패치’를 시작으로 2주만에 ‘한남패치’ ‘성병패치’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자를 이미 검거했습니다. (‘강남패치’, ‘한남패치’, ‘성병패치’는 각각 유흥업소 종사자, 바람피운 남자, 성병 보균자를 공개하겠다며 특정인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에스엔에스(SNS)계정 이름입니다. 사실여부를 떠나 모두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범죄입니다. ‘○○패치’라는 이름은 연예인 사생활을 밀착 취재·보도하는 연예매체 ‘디스패치’ 이름을 본딴 것으로 보입니다.)
■남혐 사이트만 신속 수사?
그러나 연이은 ‘○○패치’ 운영자 검거 소식에 일부 여성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범죄자를 잡는데 왜 반발하냐구요? 여성들이 불법 음란물 사이트로부터 피해를 입을 땐 ‘해외 서버라 수사가 어렵다’며 시간을 끌던 경찰이 남성들이 피해를 입자 신속히 수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패치’의 피해 대상은 주로 남성이고 운영자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실제로 국내 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인 ‘소라넷’의 경우 폐쇄까지 17년이 걸렸습니다. 핵심 운영자는 아직까지 붙잡지 못했구요. 지난달 31일, 한 인터넷 카페엔 한남패치 운영자라고 밝힌 사람이 “소라넷, 리벤지 포르노(보복성으로 유출한 성관계 영상)로 수많은 여자들이 자살해도 못잡는다 하더니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운영한 게 두 달만에 잡히는 걸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경찰의 ‘편파수사’에 반발하는 여성 50여명은 10~11일 “수사 착수의 기준은 성별?”, “안 잡은 건가 못 잡은 건가” 등의 팻말을 들고 서울 인사동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붉은 풍선을 들고 얼굴을 가린 채였죠. 트위터 ‘경찰 공정 수사 촉구 시위’(@2standard―OUT) 계정이 이런 활동의 중심입니다.
■적극 수사로 여성 피해자 구제해야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은 서버가 외국에 있어서 해당 회사의 협조가 수사에 필수적인데 이들 업체들이 사안별로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수사협조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1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패치’ 수사와 관련해선 이례적으로 인스타그램이 적극 협조를 해줬다”며 “이들 계정의 개설 목적 자체가 ‘인신공격성 명예훼손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페이스북코리아도 “국제적으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국가마다 명예훼손 범위가 다르다. 한국법상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도 수사협조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패치’ 수사와 ‘소라넷 수사’를 일대일 비교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경찰은 “소라넷 등은 서버를 두고 있는데 해당 국가에서는 소라넷 등의 음란물을 불법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운영자가 외국 시민권자인 경우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번 수사보다 훨씬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편파수사’를 지적하는 쪽에서는 경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계정도 많은데, 이들 계정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죠. “인스타그램 ‘여성혐오’(여혐) 계정인 ‘메갈패치’, ‘워마드패치’, ‘워마드패치2’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는데 경찰이 수사가 힘들다고 했다”는 글이 지난달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퍼지면서 이런 인식은 더욱 확산됐습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패치가 범죄인 건 맞다. 그러나 단순히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성매매, 음란물사이트처럼 훨씬 만연한 불법 행위에 대해선 경찰이 이만큼 근절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소라넷 문제가 커지자 지난해 12월 소라넷 전담수사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만에 소라넷은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수사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경찰 스스로 입증했던 셈이죠. ‘여혐 사이트는 봐주고, 남혐 사이트만 적극 수사하느냐’는 시위대의 비판에 억울해하기에 앞서, 적극적인 수사로 여성피해자들 구제에 앞장서는 게 우선인 듯합니다.
박수지 이재욱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