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주민센터 주차장에 과일 50상자를 남긴 익명의 기부자가 차상위계층에 전해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광산구청 제공.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려운 차상위계층에 전하면 좋겠읍니다(좋겠습니다).”
과일 50상자 위엔 이렇게 적힌 쪽지만 남겨져 있었다. 지난 11일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두고 누군가 광주 하남동 주민센터 주차장에 사과 25상자(5kg들이)와 배 25상자(7.5kg들이)를 놓고 떠났다. 하남동 주민센터는 이 기부자가 2011년 1월부터 매년 설이나 추석에 쌀, 과일 등을 주민센터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이 10번째 명절 선물이다. 주민센터 쪽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지역 내 기초생활수급가정과 차상위계층 가정 등 50세대에 사과와 배를 전달할 계획이다.
명절이라 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전국 각지의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이 이번에도 나섰다. 대를 이어 기부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지난 6일 대구 수성구에 사는 ‘키다리 아저씨’ 자녀들이 쌀 10kg 2000포(4600만원 상당)를 수성구청에 기부했다. 구민들한테 ‘키다리 아저씨’로 알려진 박아무개씨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추석마다 쌀을 기부해오다 지난 2014년 5월 작고했다. 이후 박씨 자녀들이 쌀을 기부하고 있다. 이들 가족이 2003년부터 올해 추석까지 기부한 쌀만 모두 2만6000포로 약 6억원 상당이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키다리 아저씨의 자녀에게서 전달받은 쌀을 주민센터와 복지관, 경로당, 사회복지시설 등에 골고루 나눠 고인과 가족들의 변함없는 이웃사랑을 대신 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익명의 기부천사가 직접 농사지은 쌀 500kg을 경남 거창군 마리면사무소에 기부했다. 거창 마리면사무소 제공.
같은 날 경남 거창군 마리면에도 익명의 기부천사가 직접 농사지은 쌀 500kg을 기탁했다. 9년째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쌀을 기부해온 그는 “복지 사각지대에 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밥 한 끼 제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마리면사무소가 전했다.
앞서 8월26일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후원자가 추석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제주시에 2800만원 상당의 쌀 1000포대(10kg들이)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 후원자는 2001년부터 올해까지 16년째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시는 지금까지 기부한 물품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억6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후원자가 기부한 쌀은 읍면동 주민센터를 통해 저소득층 1000가구에 전달될 예정이다.
박수지 허승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