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꿔 실제 땅 주인 행세를 한 뒤 매매 계약금을 가로챈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 비슷한 방식의 범죄가 잇따르자 경찰은 ‘개명 범죄’ 전문 브로커들을 쫓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공문서 위조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김아무개(68)씨를 구속하고 공범 신아무개(57)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 설명을 종합하면, 김씨는 지난해 7월 지인 신씨 소개로 전문 브로커를 만났다. 브로커는 ‘개명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시가 15억원 상당인 경기 파주의 12만6102㎡(3만8145평) 규모의 땅이 1975년 3월 이후 등기 사항에 변동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제안이었다. 1984년 7월 이전에 등록된 토지의 등기부등본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이름만 똑같이 바꾼다면 실제 땅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다. 이 땅의 실제 주인은 60살 김아무개씨였다.
브로커는 서울 한 지방법원의 ‘개명신청에 관한 결정문’을 위조해 김씨한테 전달했다. 김씨는 전북의 한 면사무소에 이 결정문을 제시하고 개명신고를 냈다. 브로커는 면사무소 등에서 개명 신고를 접수받아 처리할 때 법원에 위조 여부를 문의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실제 땅 주인과 동명이인이 된 김씨는 지난 1월 피해자 손아무개(55)씨를 만나 땅을 15억원에 넘기기로 하고 계약금 1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5000만원을 자신이 챙겼고, 1억원은 브로커에게 전달했다. 김씨는 이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으려고 했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개명신고를 처리할 때 법원 결정문 진위를 확인하기만 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며 “관련 제도를 법원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1984년 이전 등록된 토지를 거래할 때는 거래자와 소유자의 주민등록번호 일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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