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 전시회’를 찾은 한 시민이 박 열사 영정 앞에 서서 헌화를 마치고 추모하는 모습.
“종철이는 늘 헌신적이었어요. 마음이 따뜻하고 심지가 굳어서 모든 친구와 선배들이 좋아한 친구였어요.”
올겨울 가장 강력한 한파가 예보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김찬휘(51)씨는 1987년 1월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친구 박종철 열사를 이렇게 기억했다. 이날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 전시회’를 준비한 김씨는 두툼한 외투 위에 ‘철이 친구들 행진단’이라고 적힌 연두색 조끼를 맞춰 입은 서울대 동문 100여명과 함께 ‘보고 싶다 종철아’ ‘살려낼게 민주주의’라고 적힌 손팻말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느라 분주했다.
그는 사진전을 열게 된 취지에 대해 “박 열사가 군사독재 정권의 모진 고문에 굴하지 않고 떠나게 됐는데, 그런 의미가 촛불집회에 나오신 시민들의 마음과 연결된 것 같다”며 “친구이자 선후배였던 저희가 박 열사와 시민들을 연결해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친구 이아무개씨는 박 열사 영정 앞에 헌화하는 시민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30년 전 종철이와 함께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던 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고, 일부는 제도로 정착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믿음을 (박근혜 정부가) 일거에 무너뜨린 것을 보고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분노만큼이나 크게 반성했고, 30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은폐되고 조작되는 것들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서는 아버지 세대로 자란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열사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민 오아무개씨는 “박 열사의 희생이 군사독재를 마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30년 동안 늘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아왔다. 광장에서 30주기 추모식이 열린다고 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사진전을 찾은 이희진(27)씨는 “경찰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면서 박종철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었다. 결국 어둠 속에서 진실은 밝혀졌고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다. 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탄식했다.
권영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소위원장도 대학 1학년 때 선배로 만난 박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권 위원장은 “박종철 열사는 젊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했고, 당시 국가 고문으로 살해당했다”며 “박 열사가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촛불광장에서 국민과 박 열사를 추모할 수 있게 돼 뜻깊은 것 같다. 박종철 열사 정신이 2017년 새로운 대한민국, 민주화된 대한민국으로 다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대 동문 100여명이 ‘철이 친구들 행진단’이라고 적힌 연두색 조끼를 맞춰 입고 ‘보고 싶다 종철아’ ‘살려낼게 민주주의’라고 적힌 손팻말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2차 범국민행동 본집회에 앞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주관한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와 민주승리 국민대회'가 열렸다. 1987년 6월 항쟁 중 경찰이 던진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무대에 올랐다. 배씨는 추모사를 통해 “종철이가 남영동에서 죽었다는 기사를 봤을 때, (박종철 열사) 부모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돼서 내 아들이 그 사람들 손에 죽어갔다”며 “우린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법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세월호특별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 열사의 형인 박종부씨도 “이제 곧 살아 오는 종철이를 만날 것이다. 시퍼렇게 되돌아 오는 민주주의를 마중할 것”이라며 “그 민주주의를 부둥켜안고 이야기하겠다. 고맙다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쓰러지지 말자고,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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